2006년 12월 25일 월요일

대선주자의 첫 설치형블로그 등장

대선 주자 들의 사이버 관련 기사를 보았다.
모든 출마 예상자들이 인터넷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의 승리를 이끌었던 인터넷 파워를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다른 정치인들도, 홈페이지는 이제 기본이다.
또,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활용해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네이버의 폐쇄형 블로그를 통해 포털 사이트의 검색망을 잘 써먹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공개와 공유의 자유로운 세상에 발을 들여 놓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설치형 블로그를 통해 진정한 인터넷 공간으로 들어온 후보는 없었는데...

오늘 기사를 통해 보니,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홈페이지와 함께 블로그를 만들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블로그(http://blog.mbplaz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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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블로그

다시 읽고 싶은 블로그가 되기 위한 SONIC의 법칙(, 웹2.0의 경제학, 김국현저)

다시 읽고 싶은 블로그가 되기 위한 SONIC의 법칙

Simplicity: 간결하게
간단 명료한 글이 읽기 좋음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블로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레이아웃을 고려하여 적절한 양의 글만 쓰는 것이 바쁜 읽는 이를 편하게 합니다. 특히 RSS리더에 노출되는 제목이나 첫 문단은 특히 간결하게 하여 독자가 읽을지 말지 빨리 판단하도록 하면 더 좋습니다.

Originality: 독창적으로

여러분만의 목소리, 여러분만의 감수성을 세상에 보여주세요. 독창적인 컨텐츠를 스스로 만들고, 특히 Cut&Paste는 되도록 하지 맙시다. 요즈음 펌 블로그가 많습니다만, 독자들은 여러분의 블로그에서만 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때 고마워할 것입니다.

News:
새로운 정보를

뒷북보다는 뉴스가 일반적으로 즐겁기 마련입니다. 사실에 근거한 기사를 쓰는 기자의 심정이 되어 봅시다. 특종을 잡았을 때, 내일 아침 스타 블로거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허풍이나 과장은 안되겠지요.

Impact: 강렬하게

지금 쓰려는 여러분의 의견은 세상에 어떤 충격을 주려 하고 있습니까? 읽는 이에게 남는 주장을 하도록 노력합시다. 단적으로 말해서 왜 스스로의 시간과 자원을 써가며 글을 쓰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Care: 사려 깊게

블로그는 댓글(comment)과 관련글(trackback)이 얽히고설키는 관계를 증식합니다. 마치 인맥이 넓어지듯 글맥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독선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행여 스스로 느끼지 못할 경우도 있으니까, 가까이 있는 동료나 친구에게 "요즈음 내 블로그 어때?"라고 물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김국현의 웹 2.0 경제학>

2006년 12월 21일 목요일

인터넷 실명제, 인터넷기업을 배불리기 위한 것이었다니~

인터넷 실명제 논란을 다시 한다는 것은 해묵은 논쟁일까?
그렇지 않다. 잘못된 것은 몇 년을 거쳐서라도 고처야 할 것이다.

인터넷실명제가 제기된 것은 인터넷 상의 범죄행위가 늘어간다는 이유 때문이다.
필명 혹은 가명으로 글을 써서 험담을 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다는 것이다. 또, 인터넷 상에서 가짜 아이디로 사기행위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은 떳떳하게 실명을 사용하여 인터넷의 매너를 지키라는 것이다.
사실, 이제 한국 인터넷은 실명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특히, 다음, 네이버 처럼 많은 국민이 사용하는 포털의 경우는 작은 정부 정보망이라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나 기관 등의 홍보를 통해 모든 사람들은 의연중, 동의하고 지나간 것이다.
그렇지만, 일상적으로 오는 스팸메일, 스팸문자 등으로 만연되어 있는 현실은 어쩌면 이런 실명제로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뭘 하나 가입하려고 해도, 주민번호, 핸드폰 번호를 기입하라고 강제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나쁜 것은 사실이다.

오늘 김중태원장의 블로그를 보니, 인터넷 실명제를 통해 기업이 배를 불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국 사이트가 주민번호를 요구하는 이유

인터넷 열풍이 불고 코스닥 거품이 형성되던 시절에 꽤 많은 기업과 서비스가 다른 기업으로 팔리곤 했는데, 이때 인수가격 산정은 아주 간단했다. 예를 들면 '회원수*4만원'이 하나의 표준이 되던 시절이다. 1만 회원을 가졌으면 4억 원, 10만 회원을 가졌으면 40억 원 하는 식으로 계산해 사고 팔았다. 10만 회원을 가진 한 선배의 엔터테인먼트 사이트도 그런 계산법으로 40억 원에 팔렸고, 그 선배는 캐나다로 떠났다.

---김중태의 글, 한국사이트가 주민번호를 요구하는 이유 중에서---

이글에서 김중태 원장은 주민번호가 인터넷 기업의 자산 규모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가입회원의 규모를 주민번호의 많고 적음으로 정하고, 그 수량에 값을 곱한다는 식이다. 그래서 자산을 높여 사고 판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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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터넷실명제는 인터넷 기업의 자산 척도가 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외국의 실례를 얘기하고 있다. 마치 인터넷실명제를 하지 않는다면, 거래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유명한 옥션 사이트 이베이에서도 인터넷 실명제를 사용하지 않고, 메일주소로 본인 확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주민번호로 범죄를 막고자 하지만, 이미 가상주민번호 생성기가 쉽게 사용되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가상번호로 성인사이트를 들어가고, 가상아이디를 만들어 게임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의 본질은, 우리의 개인정보를 가지고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또, 진실을 속여가면서, 마치 실명제를 하지 않으면 인터넷 세상이 범죄 천국이 될 것처럼 호도했던 정부, 기관, 기업 들의 태도에 있다. 사실, 처음 인터넷이 확산되고 있을때, 사이버 세상을 눈엣가시처럼 본 사람들도 그런 부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미지의 세상을 두려워했고, 질투하고 경계했다. 그런데 막상 그 곳이 돈줄이라는 것을 알고 덤벼 든 것이다. 한 철학자는 그래서 인터넷 세상을 노마드(유목민)에 비유했다.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사람들의 탈출구라고.

이제 인터넷 세상도 권위와 권력의 세상이 되었다. 자유로운 공간이 자꾸 좁혀지는 느낌이 든다.
우린 또 어디로 가야 할까?

2006년 김대중도서관후원회 송년 영상


[Flash] http://dory.mncast.com/mncHMovie.swf?movieID=10011330920061221132326&skinNum=1



< 제작 : 양승오>

2006년 12월 20일 수요일

검찰수사관의 방문을 받고

검찰,
언론기사에서는 지겹도록 듣는 단어지만, 나에게도 이제 친근한 단어가 되어 버렸다. 전에 근무한 회사의 동료 문제로 그동안 검찰청 수사관의 전화를 받아왔다. 출석 요구에 응해달라는 것.
그런데, 다른 회사 동료들의 출석 얘기를 들으니 참 힘든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10시간, 12시간이 넘게 검찰에 들어가 참고인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많은 얘기를 나누나? 무슨 할 말이 있는거지?
그런데, 들어본 얘기는 10시간 동안 참고인 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몇 가지 질문하다가 나가고, 또 들어와서 물어보고 이런식이란다. '검찰'이라는 공간도 불편한데 그런 곳에서 장시간을 견디어야 하다니, 범죄자도 아닌데 그렇게 할 수 있나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동안 검찰로 와 달라는 요청에 응하지 않자,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여의도 스타벅스에서 차를 마시면서 부드러운 대화가 진행되었다만 그리 좋은 경험은 아니다.

1년 반이 넘은 워크샵의 기억을 어떻게 상세히 떠올릴 수있을까?
정말 거짓말 탐지기라도 들이대고 조사해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법정의 증인 출석 요구가 있을때는 반드시 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증인이 되면 검찰의 조사에 응해야 합니다."는 말을 남기고 가버린 두 사람.

바쁜 일상 속에 씁쓸한 하루가 되어 버렸다.


2006년 12월 19일 화요일

재일교포 여가수 성선임영상물

어제 밤, 후배 정현이가 불현듯 메신저로 등장했다.

아래의 주소를 링크해주면서 영상을 보라고, 그리고 주위에 널리 알려 달라고 한다.

오늘 회사에 출근해 1시간 영상을 봤다.
성선임의 열정이 가상하다.


http://embed.pandora.tv/channel/prg/embed_view.asp?ch_userid=messguy&id=2588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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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활동중인 성선임, 재일교포3세로 한국인 국적으로 가지고 일본가요계에서 활동한 1호라고 한다.

2006년 12월 18일 월요일

2006년 민혁이와 눈싸움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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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서울에 대설이 내리던 날,,,
12월 17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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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편]민혁이와 눈싸움하기

[Flash] http://dory.mncast.com/mncHMovie.swf?movieID=10011330920061218111256&skinNum=2



2006년 12월 17일 서울에 대설이 내렸습니다.
아파트 주변에서 눈싸움을 하고 놀았습니다.

[창사랑/성명서] 최구식은 패륜아적 망발을 취소하고 석고대죄하라

[성명서] 최구식은 패륜아적 망발을 취소하고 석고대죄하라  

     
1. 규탄성명을 하게 된 前提

지난 12. 15.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도저히 있어서는 안될 일이 발생하였다. 이미 도하 언론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알게 된 최구식의 패륜아적 비겁한 발언을 말하는 것이다. 走拘的 발언이라 평하는 것이 더 적확하리라. 소위 명문대를 졸업하고서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근무하였으며, 2002 대선 당시 한나라당 언론특보를 한 자가 한 언급이라고는 상상을 못할 정도의 수준 이하적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바이며, 사실관계에 있어 극단적 오류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한 발언의 배경과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사실관계를 바로 함은 물론 비겁한 정치적 의도를 분쇄하고자, 이회창 팬클럽 한국창의 입장을 아래와 같이 공식전달하며, 최구식은 물론 그 발언의 배경 인사와 집단의 작위적 부작위적 행태에 대하여 공개사과를 촉구하는 바이다.

2. 한국昌에 대하여

참고로 주로 영남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2006년에 백승홍씨가 영입한 조춘호씨를 대표로 하여 활동하는 곳이 일반인들이 알고있는 '창사랑'이며, '한국昌'은 2002년 대선 이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오랜동안 '창사랑'에서 수만건의 글로써 이회창씨를 지지하고 수백회의 대외활동을 주도한 진성회원들이 보다 진취적이고도 열성적인 활동을 담보하고자 기존의 창사랑과는 그 활동과 운영에 있어 차별성을 기하고자 2006. 7.에 창립한 순수 이회창 팬클럽이다.

한국창은 창사랑과는 큰 길에 있어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활동의 반경과 성격 그리고 개성에 있어서는 창사랑과는 차별성을 두면서 이회창 팬클럽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전국적 조직임을 밝힌다. 팬클럽으로서 다양성은 유지하되, 전술한 바와 같이 큰길에 있어서는 함께 할 동지이기에 한국창은 물론 창사랑 역시 이번 최구식의 망언에 대하여는 한뜻으로 규탄하고 최구식의 공개사과가 있을 때까지 대동단결하여 함께 투쟁할 것임을 밝힌다.

3. 문제의 최구식 발언의 중대한 사실관계 오류에 대하여

지난 12. 15. 문제의 최구식의 발언요지는 "최근에 이회창씨가 하시는 말씀 내용을 모르는 국민이 어디 있느냐. 이회창씨는 충무공이 아니라 원균에 가깝다. 역사를 보면 원균은 그나마 나았다. 2002 대선은 (이회창씨) 본인 과오로 패배를 초래했다. 이회창씨는 이제 자숙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있다. 이에 우선 최구식의 발언 가운데 충무공 관련 언급의 사실관계에 심각한 오류를 지적하고자 한다.

이회창님은 지난 12. 13. 경희대 강연 마무리 부분에서 젊은 학생들에게 나라사랑의 신념을 강조하시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사람과의 가치관과 신념이 그 사람을 얼마나 강하게 만드는지 말하고 싶다. 우리의 성웅 충무공 이순신은 정의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과 구국의 신념을 가진 분이었다. 불의 앞에 타협을 몰라 삭탈관직당하고 투옥까지 되었지만, 나라가 위급하자 조정은 다시 통제사로 복귀시켰다. 복귀해보니 수백척이던 군선은 간데없고 오직 12척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서 말했다. “상유십이,순신불사 (尙有十二, 舜臣不死)” 아직 12척이 있고 순신이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염려마십시오 한 것이다.「순신불사」, 나는 이 글귀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에 전율같은 감동을 느낀다. 얼마나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으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그는 그 강한 확신으로 결국 나라를 구했다. 여러분의 가치관과 신념은 여러분을 강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서 이 나라, 이 사회를 이끌어갈 위대한 지도자, 인재가 많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

이 대목은 누란지위에 빠진 작금의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하여는 이충무공님과 같이 백의종군하더라도 구국의 일념으로 각자 자신의 가치관을 명확히 하고 신념으로 자신을 무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을 강하게함이고 그러한 학생들이 많아질 때 이 사회, 이 나라가 더욱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융성할 것이다라는 점을 나라사랑하시는 마음에서 우러난 순수열정으로 강조하신 것임은 삼척동자도 요약할 수 있는 바이다.

그 어느 대목에도 이회창님 본인이 현재에 처한 상황이 이충무공이라는 것을 직, 간접적으로 강조한 바도 없질 않은가? 그 어느 대목에도 순신불사=회창불사로 동일시한 바가 없지 않은가? 백천간두에 선 나라를 보면서 충무공님의 나라사랑에서 비롯된 순신불사 문귀의 정신를 떠올려 전율적 감동을 느끼지 않는 국민이 매국노이지, 감동을 느낀 분을 원균보다 못한 분이라 폄하하는 최구식의 해괴한 논리수준이 과연 민의의 대변자 자격이나 있을까?

4. 문제의 최구식 발언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 관하여

- 공부를 많이 하여 좋은 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을 다니고 민의의 대변자 자격에 오른 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성원을 보내는 것은, 그 식견으로 나라와 국민을 진정 사랑하고 인도하여 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지, 그 개인을 부러워하거나 잘났기 때문이 아니니라. 그만큼 식자층과 지도층들의 책임이 무겁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최구식의 망발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있어서는 안될 패륜아적 발언이기에 前述한 사실관계의 오류지적과 별도로 아래에서 그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 관하여 가감없는 비판을 하고자 한다. 서울대를 나와 조선일보 기자까지 한 현역 국회의원이, 그것도 이회창님을 존경하며 따랐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경천동지할 망발을 쏟아 놓을 땐, 정신이 미쳤거나 불순한 의도가 바탕되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추론하는 것이 사회과학 논리라 하겠다. 그런데 최구식은 미치지 않았고 정신상태가 멀쩡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판단함에는 절대 과실이 없는 것이지 않은가?    

우선, 최구식의 문제의 발언은 현재 한나라당 대권주자로 불리는 일부 인사들과 그 측근들의 저급한 정치적 의도에 심각한 위협과 초조감에서 비롯된 극단적 사태의 일단면이라 단언한다. 그러하기에 누가 봐도 알 수있는 사실관계 지적의 오류도 무시한채 논리의 비약을 서슴치 않은 것이다.  

- 상대방의 부정과 불법으로 정권을 강탈당하였음이 진실임에도 정권교체를 이뤄내지 못한 것이 전적으로 당신 책임과 부덕의 소치때문이라며 지난 4년간을 칩거하시면서 자숙하신 분이다. 또한, 이회창님은 북핵위기는 물론 노정권의 한심한 작태로 도탄에 빠진 민생 그리고 엉망진창인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실에 수많은 불면과 고뇌의 날들을 보내신 분이다.

그런 분이 올해 들어 극동포럼을 시작으로 동국포럼, 창원강연, 연세대와 경희대 강연으로 외부활동을 하시게 된 것은 다 이상 침묵한다는 것은 국민과 역사앞에 죄를 짓는다는 그야말로 순수열정에서 우러나신 것이다. 새삼 각종 강연에서의 원고내용은 재차 언급하지 않아도 최구식을 비롯한 한심한 정치욕망에 목마른 자들이 소상히 잘 알 것이기에 생략하고자 한다.

- 최구식! 눈이 있으며, 머리가 있으면 그 글들을 읽어봐라. 그 어디에도 이회창님이 자신의 억울함과 정치적 욕구가 분출되어 있는지 말이다. 그럼에도 순수하지 못한 정치적 욕망을 가진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이 불안감과 초조감에 휩싸인 나머지 최구식을 대타로 내세워 백주대낮에 자신들이 모셔야 할 한나라당 큰 어른이신 이회창씨를 향하여 난자질을 감행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최구식인가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최구식이 누구인가? 우선 최구식 본인의 2002년 당시 행적을 살펴보자.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2002 대선 당시 한나라당 경선후보 언론특보를 통하여 정계에 입문한 자가 바로 최구식이다.

이 대목에서 최구식 의원실은 12. 16. 전화통화를 통하여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씨 언론특보를 한 사실이 없으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시 경선후보 언론특보를 한 것이다. 최구식 홈피에 게재된 관련 프로필 내용은 정확한 기재가 아니며, 이회창씨를 직접 도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신경질적 반응으로 강조하기조차 하였다.

좋다. 이회창님이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가 아닌 그 이전인 경선후보들 언론특보만 하였다 치자. 그럼 이회창씨는 경선후보가 아니었단 말인가? 이회창씨가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후에 대선후보 언론특보를 하지 않았다면, 최구식은 한나라당 이회창씨 당선을 위하여 일하지 않고 어디 당시 민주당 가서 일했단 말인가? 손으로 하늘을 가릴수 없듯이 보좌진들 교육부터 똑바로 시켰으면 하기에 이 일회를 인용하는 것이다. 토요일 왜 출근하지 않았냐? 무서워서 출근하지 않았냐? 하면서 최구식 의원실에 몇 차례 통화한 사람이 바로 본인이었음은 그 사무실 여직원에게 관등성명과 연락처까지 남긴 바와 같다. 웃기지도 않은 실수를 본인에게 하였음은 아이러니하다 하겠다.

- 다음으로 왜 최구식이 용감(?)하게도 직접 나서게 되었는지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대선 직후 한나라당 당대표 경선시 부산연설에서 "삼고초려하여서라도 이회창씨를 모셔오겠다"고 공언하는 바람에 그 덕에 당대표가 된 조선일보 출신 최병렬씨의 친인척이 아니던가? 최병렬씨가 당 대표되는 바람에 무명의 최구식이 하순봉 前 의원을 물리치고 경남진주에서 17대 국회의원 공천을 받은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특히 傳問에 의하면 문제의 최구식 발언이 있기 며칠 전부터 최병렬씨가 국회의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문제의 최구식 발언과 같은 요지의 내용을 수차에 걸쳐 하였다한다. 최병렬씨가 누구인가? 천하가 다 아는 박근혜씨를 지지하는 사람 아닌가? 자 그럼 부연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정리된 것이 아닌가? 결코 소설 쓰는 것 아니다. 결코 허위의 사실이나 허위의 고의로써 특정인을 명예훼손하는 것 아니다. 오로지 공공의 알권리를 충족하고 정치발전이라는 공익적 목적에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한편으로 직격탄으로 명예훼손당한 이회창님을 변호하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 우리 말은 솔직히 하자. 이회창님 없는 이회창님 정신이 살아있지 않는 한나라당이 존재하기나 하였겠나? 한나라당없는 최구식의 현재가 존재하기나 하였겠나? 2002년도에 이회창님이 최구식을 아끼지 않았다면 아무리 누구 친인척이라 하여도 오늘날 제17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번듯한 명함의 최구식이 존재하기나 하였겠는가? 머리 좋다는 최구식이 답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그 같은 망발을 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불의를 추구하는 깡패집단에서도 이런 배신을 없는 법이다. 하물며 바른 정치를 추구하는 곳의 소속원이 자신을 아껴주시던 큰 어른께 이런 행패를 부린다는 것은 패륜아와 다를 것이 뭐 있는가? 특히 최구식을 부추킨 인사는 물론 그렇게 부추킨 자를 자신의 지지자로 둔 대권주자 역시 자신의 직접적 작위에 의하지 않았다하더라도 도의적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작금의 한나라당이 얼마나 어려움에 처해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가하게 돌아다니면서 마늘이나 까고 있지를 않나, 초선의원이 망나니짓을 하는데도 팔짱까고서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부작위와 수수방관으로 일관하는 강재섭 대표는 도대체 어느나라 당 어느 정당 대표인지 묻고 싶다.

- 이회창님이 바로 며칠 전에도 말씀하시지 않었던가? 한나라당 국회의원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똘똘 뭉치지 않으면 절대로 저들을 이길 수 없다고 말이다, 이회창님은 자신의 과책이 아니다 할지라도 좌파2기 정권 출현이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시라며 지난 4년간을 자숙하시며 당신 말씀대로 죄인의 심정으로 칩거하시면서도 오로지 나라와 국민생각에 몰두하신 분이다.

그런 분이 더 이상 나라가 침몰하는 것을 보시다 못해 원로로써 오랜 경험과 풍부한 식견에서 비롯된 나라와 국민사랑의 정신을 순수 강연을 통하여 복음을 전파함을 엉뚱하게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초조에 빠진 나머지 그 분의 순수열정을 - 반대파도 아닌 - 한나라당 일부 인사들에 의하여 폄훼되고 명예가 훼손된다면, 당신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고 실질적으로 어느 정당 소속인지 되묻고 싶다.    

5. 한국昌의 요구사항

정리하고자 한다. 이회창 팬클럽 한국창은 이번 최구식 망발사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촉구하는 바이다. 한국창은 이러한 우리의 입장을 관련자들에게 전달하여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을 공개선언하는 바이다.

1. 최구식은 좌파정권 재출현 방지를 염원하는 애국시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하여 대국민 공개사과하라.

1. 최구식은 지금 당장 이회창님께 행한 망발을 취소하고 석고대죄하라. 그러하지 않으면 한국昌은 凡昌계열은 물론 애국시민과 연대하여 법적, 사실적 조치를 총동원하여서라도 최구식의 만행을 의율 및 규탄하여 이회창님의 명예를 회복시켜드릴 것이다.

1. 최구식을 조종내지는 부추긴 세력 역시 지금 당장 그 배후를 밝히고 공개사과하라.

1. 의원총회에서 있어서도 안 될 사태를 방조 내지는 사후 침묵하는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를 비롯한 책임자들은 최구식을 즉각 출당조치하고 재발방지 약속과 함께 국민과 이회창님께 공개사과하라.  

1. 한나라당은 특정 대권주자 줄서기에서 벗어나 좌파정권 3기 출현을 막고자 비좌파연합 구국전선을 주창하시는 이회창님의 국민과 나라를 위한 순수의지에 적극 동참하라.

2006.   12.   17.

이회창 팬클럽 한국昌 [
http://www.changsarang.co.kr ]

대표  이 건 호(필명 정상)

2006년 12월 15일 금요일

선거는 구도, 인물, 캠페인이다

" 선거는 구도, 인물, 캠페인이다"

일반적으로 선거를 좌우하는 3요소로 구도, 인물, 캠페인을 말한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우선순위로 선거 구도를 고려하고, 다음에는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비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선거 캠페인 등 당시 선거분위기에 따라 한 표를 행사한다.

▶ 구도
구도란, 출마지역구에서 선거를 둘러싼 당시의 지역적 정치 환경, 출마자 경쟁 상황, 그리고 전략적 대립구도 등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선거캠페인 전문가들은 선거 구도가 후보자 당락의 60% 정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역적 정치 환경이란 일정 지역의 정치적 영향력, 즉 정당지지도, 이념적 특성 등이 반영된 것이다. 우리 나라와 같은 지역적 대립구도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후보자의 정치 환경이 당선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호남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이 어렵고, 영남지역에서 열린우리당 후보의 당선도 기적인 것처럼 지역구의 정당 지지도가 가장 큰 규정력을 가진다. 비교적 정당 지지도가 경합인 수도권에서는 해당 지역구의 정당 지지층의 결집정도와 충성도 등이 당락을 좌우한다.

정당지지도와 충성도가 비슷한 경우에는 해당 선거구에서 양자 대결인가? 다자대결인가? 등등에 따라 큰 판의 선거결과가 좌우된다. 이것이 구도의 출마자 경쟁 상황이다. 유사한 지지층을 가진 경쟁 후보자가 있을 경우는 투표에서 불리하게 되는 것은 뻔한 것이기 때문이다.
97년 대선에서는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당선이 어려운 구도였을 것이다. 거꾸로 당시 이회창 후보가 낙선한 것은 이인제 후보의 출마를 막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97년 1월 신동아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당시 유력한 대권 후보자는 박찬종-김대중-이회창 순이었다. 그러나 이인제의 등장으로 경선 판도가 변화하고, DJP연합으로 양자구도로 변화하면서 김대중 후보가 20만표 차이로 대선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97년 1월, 박찬종-김대중-이회창 순 = 97년 대선 때의 일이다. 그해 1월 동아일보 자매지 ‘신동아’는 현대리서치와 공동으로 전국 성인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당시 집권여당 신한국당에는 ‘9룡’이 대권을 향해 군웅할거하고 있었고, 야권에서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네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여야 후보들이 모두 대통령 선거에 나온다면 누구를 찍겠느냐’는 물음에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이는 박찬종 신한국당 상임고문이었다.
박 고문은 20.2%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19.2%)를 근소한 차로 앞질렀다. 다음으로는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상임고문이 12.0%로 3위를 기록했고, 조순 서울시장이 6.2%로 뒤를 이었다. 신한국당 주자들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박찬종·이회창 고문 순이었다.
‘세계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여야 후보를 망라한 조사에서 박찬종(27.4%)-김대중(20.4%)-이회창(19.0%)순이었다. ‘한겨레’가 실시한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가장 바람직한 인물’을 묻는 조사에서는 박찬종(33.5%)-이회창(25.2%)순이었고, ‘한국일보’ 조사에서도 박찬종-이회창-이홍구 순이었다.
이같은 조사가 발표된 이후 정치권의 상황은 급변했다. 상도동계의 좌장이었던 최형우 고문이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깜짝 놀랄 젊은 후보’ 이인제 당시 경기지사가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여기에 TK출신 김윤환 고문이 ‘킹메이커’를 자임하며 이회창 후보 만들기에 앞장서면서 신한국당 경선 판도는 급격히 이회창 대세론으로 기울었다.
줄곧 2등을 기록하던 김대중 총재는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문제가 불거진 이후 지지율 1위로 올라선 이후 이인제 후보의 독자 출마와 ‘DJP연합’을 통해 20만표차로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노풍’ 예상 못한 2002년 1월 여론조사 = 2002년 대선 여론조사 결과 역시 실제 대선 결과와는 큰 편차를 보였다. 대선이 치러진 2002년 1월까지만 해도 2000년 총선 이후 이회창 총재가 30%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었고, 여당에서는 이인제 고문이 거의 유일한 대항마로 인식돼 있던 시점이었다.
2002년 1월 ‘한국일보’가 ‘차기 대통령감으로 적합한 인물’을 묻는 질문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31.7%로 부동의 1위를 달렸고, 민주당 이인제 고문이 16.8%로 2위,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8.3%)-민주당 노무현 고문(8.2%)-고 건 서울시장(4.6%)-무소속 정몽준 의원(4.4%)-민주당 정동영 고문(2.5%) 순이었다.
‘내일신문’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02년 1월 조사에서는 당시 집권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차기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도를 묻는 질문에 이인제 고문이 37.8%로 가장 높았고, 노무현 고문(18.2%)-고건 서울시장(13.4%)순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 조사에서도 이인제(24.8%)-노무현(14.9%)-정동영(8.1%) 순이었다.
이들 여권 예비후보들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의 1:1 가상 대결에서는 이인제 고문과의 가상대결에서만 오차 범위 내에서 근소한 차로 앞섰을 뿐, 이 총재가 여타 모든 여권 후보를 큰 격차로 앞섰다.
‘서울신문’ 조사에서는 ‘여당 대선 후보로 누가 유력한가’라는 물음에 이인제 고문이 44.6%로 노무현 고문(11.5%)을 세배 이상 크게 앞질렀고, 2002년 2월 실시한 ‘세계일보’ 조사에서도 이같은 큰 격차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세계일보’ 조사 한달 뒤 실시된 국민경선에서 광주 경선을 기점으로 ‘노풍’이 점화됐고 광주 경선 이전까지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는 ‘그땐 그랬지’라는 구문이 되고 말았다.
97년과 2002년 두 번의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실시된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대선 과정에 얼마나 여론의 진폭이 클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높은 지지율에 기대 안주하는 선두주자 지지율의 불안정성과 추격하는 후발주자가 여론의 역동성에 힘입어 급부상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2007년 대선 과정 역시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가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계기로 여론이 널뛰기를 할 지, 앞서가는 주자는 이같은 변화 가능성을 어떻게 대비할 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내일신문) 구자홍 기자 jhkoo@naeil.com


또다른 선거구도 요소로는 전략적 대립이다. 즉, 주요 이슈로 인해 후보자간 전선이 대립하는 경우이다. 지난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 주요 아젠다였다. 즉, 후보자들 간의 전선은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선거는 바로 탄핵을 반대하는 열린우리당의 앞승이 되었다. 최근, 미국의 2006년 중간선거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부시행정부의 ‘이라크전쟁 실패’에 대한 국가적 아젠다가 다른 구도 요소보다 앞서, 전통적으로 공화당 우세 지역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었다. 

▶인물
선거에서 인물적 요소는 후보자의 경쟁력과 자질 등을 의미한다. 선거의 구도가 다소 불리하더라도 후보자의 능력이 뛰어난다면,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100표차 당락이 좌우된 곳이 517곳이나 되는 것을 보면, 팽팽한 선거구도에서 인물 경쟁력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02년 수도권 기초단체장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가 압승한 가운데, 당시 민주당 후보로 서울에서는 관악구 김희철, 성동구 고재득, 중구 김동일, 경기도에서는  부천 원혜영, 광명 백재현, 군포 김윤주, 이천 유승우 시장 등은 당선된 사례가 있다.
일반적으로 후보자의 경쟁력은 선거에서 30%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문제는 상대후보의 약점과 비교하여 우리 후보의 장점을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잘 알리느냐이다.

☞ 경기도 군포시 김윤주 시장 사례 # 사진 1 김윤주 선거 홍보물 : 책임 정창교
당시 선거상황은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비리문제로 ‘국민의정부’의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선거 6개월 전의 여론조사에서 정당지지도는 민주당 25% / 한나라당 31%로 매우 어려운 환경이었다. 게다가 한나라당 후보는 지역토박이 출신으로 서울법대를 졸업한 전직 시장출신인 반면에 민주당 김윤주 후보는 타 지역 출신인데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에 노동운동가 경력이 유일했다.
DJ 심판론을 앞세운 한나라당 후보에 맞선 선거 전략으로 김윤주 당시 시장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켰다. 김시장은 재임 중에 군포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결과 행정능력에 있어서는 큰 업적을 남겼다. 정부 및 시민단체 평가에서 군포시가 전국 1위의 자치구라는 실적을 이루었다. 선거 캠프에서는 객관적인 수상실적에 근거해서 김시장을 전국 1등의 기초단체를 만든 시장으로 집중 홍보했다.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1등 도시, 1등 시장”이라는 컨셉은 상대후보에 비해 학력, 지역연고, 정당 지지율 등 정치구도에서 열세인 상황을 돌파해 나갔다. 결국 김 시장은 민주당 지지층에게 승리의 확신을 심어주면서 부동층에서 압도적 우세를 확보하면서 8,000여 표 차이의 대승을 이루었다.

▶캠페인
선거캠페인인란 선거운동 기간 내에 제한된 인적, 물적, 사회적, 환경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협력적 활동이다. 다수인의 협력을 통하여 동원가능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사고, 좋은 판단력, 그리고 올바른 의사결정이 요구된다.
정치구도와 후보자 경쟁력이 고정불변이라면 선거캠페인은 유동적이다. 일반적으로 캠페인이 선거결과에 미치는 효과는 실제 득표의 5-10%라고 한다.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선거 캠페인으로 5-10%의 득표 효과를 올리는 것은 실제 선거에서는 관건적이다. 아무리 선거구도가 불리하다하더라도 상대후보의 약점에 대비한 우리 후보의 장점을 잘 부각시키는 효과적인 선거캠페인을 전개한다면 접전지역의 경우 그 결과를 뒤바꿀 수 있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에서 경남 함양군수 선거는 불과 31표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등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1, 2위 득표 차이가 100표 이내인 곳이 7곳에 달했다. 광역의원 선거에서는 500표차 이내인 곳이 17곳이었으며,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100표차 이내인 곳이 502곳이었다. 특히 기초의원의 경우 5표차 이내인 곳도 무려 29곳에 이르렀다.
2000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보면, 2,000표 이하의 표차로 당선이 된 지역이 28곳, 500표 이하로 당선된 지역은 9곳이었다. 또한 탄핵열풍이 불었던 2004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도 2,000표 이하의 표차로 당선된 지역이 20곳, 500표 이하로 당선된 지역은 5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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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14일 목요일

김경협, 부천노동운동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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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꾸러기같은 미소를 가진 김경협 감사

김경협 감사(현, 한국산업인력공단 감사)는 화려한 이력보다 그 순수함이 떠오르는 인물이다. 작지만 강단있는 체구에서부터 현대사의 역경을 걸어왔다는 느낌이 전달된다.

8,90년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잘 알려진 김경협 감사는 '부천노동운동계'의 신화적 인물이다. 1989년 부천지역금속노동조합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부천노동계와 인연이 본격화되었다. 한국노총부천지부 기획실장으로 옮기고, 부천노총 의장을 3선하면서 부천노동계의 '대부'역할을 수행했다.

그후, 김감사는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을 거쳐서 지금의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감사직으로 옮긴 것이다. 부천지역에서 정치적 꿈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 부천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 노부모님도 모시고 살고 있어 부천이 제2의 고향이다. 살아오면서 만나왔던 분들과 계속 인연이 이어지는 것이고, 뭐 특별하게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 가까운 분들하고 산에도 가고, 좋아하는 낚시도 가고. 아직은 그렇다"는 조금 건조한 대답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그의 생활 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실, 지난 17대 총선부터 김경협의 부천 출마설은 무성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만큼 부천노동계의 김경협의 팬클럽이 많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파워가 큰 지역인 만큼 그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김경협 감사는 전남 장흥 출신이다.
전남장층초-장층중-국립부산기계공고-성균관대 사회학과(82학번)의 경력 사항을 보면, 그의 인생이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장흥 시골 마을, 가난한 농부의 6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꿈보다 가난을 먼저 배운 것이다. 그래도 어릴 적 꿈은 언론기자였다고 한다. 사회 곳곳을 누비면서 매일 새로운 기사를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것. 그런 꿈은 현실 속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장남이라는 자리, 지병으로 누워계신 아버지 등 집안을 챙겨야 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꿈보다는 가족의 생활이 더 시급한 것이었다.

그는 어려운 환경으로 당시 교장선생님의 추천으로 국립부산기계공고를 입학하게 되었다. 3년간 전액 국비 지원이 된다는 것과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는 3학년 실습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정밀가공기능사(선반)자격증을 취득하고 3학년때 실습을 나갔다. 열악한 작업환경, 비인간적인 대우, 장시간 근무 끝에 받은 월급은 겨우 몇 푼, 근로자가 되어 소작농만큼이나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미래를 생각하니 눈 앞이 깜깜했다"

그래서, 서울로 상경해 성균관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그렇지만 암울한 80년대 사회 속에서 젊은 사회학도에게는 캠퍼스의 낭만을 즐길만한 여력이 없었다. 군부독재 투쟁 등 학생운동을 하면서 제적을 당하고 2년간의 옥고를 치르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사회변혁의 열정은 "현장투신"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김감사는 선반자격증 덕분에 남들보다 현장 적응이 빠르고 노동자와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90년대 민주화 이후 노동계를 떠나 새로운 길을 떠난 당시의 많은 동지들보다 그의 외도는 조금 늦은 편이다. 오히려, 부천지역 노동운동의 전환과 활성화를 위해 스스럼없이 자신의 자리를 내준 것이 옳다.

그는 최근, 지역자치와 복지분야에 대한 공부로 바쁘다. 새로운 김경협의 역할을 찾기 위해 분주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제 노동운동의 경험을 시민과 함께 하는 생활운동에 투자하고 싶어 한다.

2006년 12월 13일 수요일

2007년 40대 유권자를 주목해야 한다(1)

2007년 대선의 포인트 중에서 40대의 표심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40대의 표심이 선거에서 중요하게 된 것은 40대층의 투표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도 이른바 386이라 불리는 30대 후반부터 40대초반의 유권자들의 표심이 움직여 기적적인 결과를 나았다는 평가가 많다.

지금의 40대는 흔히 말하는 베이비붐세대라 할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위 기사에서처럼 1955년부터 1963년 생을 말한다. 지금 나이로는 43세-51세의 연령층을 말한다. 40대층은2005년 인구구성비에서 23.2%를 차지하고 갈수록 증가하여 2008년에는 24.8%가 될 것이라는 통계청 발표다.

"베이비붐세대 주택수요 앞으로 7년간 증가한다"

[한국일보 2006-10-26 18:51]   

40대초~50대초 인구 급증… 향후대책, 고급주택 실수요 인정해야

앞으로 중대형 평수의 고급주택을 중심으로 하는 주택수요가 향후 7년 여 동안 집중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통계를 감안할 때 주택 교체수요 연령대인 40대 초반~ 50대 초반이 향후 수년 동안 급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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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최근 주택수요를 정부가 가수요로 판단하고 세금으로 억누르기만 할 경우 오히려 집값 급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분당급' 신도시로 추가 개발되는 인천 검단신도시나 파주신도시 역시 이들의 고급주택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40~54세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앞으로 계속 상승해 2013년 25.5%로 절정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앞으로 7년 후면 우리나라 국민 4명 가운데 1명이 이 연령대인 셈이다.

이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생, 현재 43~51세)가 향후 수년간 계속해서 40~54세 연령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서강대 경제학부 김경환 교수는 "여러 실증분석 결과 주택수요가 가장 왕성한 시기는 44~48세이고, 좀 길게 보면 50대 초반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며 "소득이 증가하고 있는 것까지 고려하면 향후 4~7년 동안 질 좋은 주택에 대한 실수요는 계속해서 증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자치부가 2004년 말 아파트를 포함한 우리나라 건물 소유주를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에서도 40~49세(33.9%), 50~59세(24.0%) 순으로 많았다.

2001년부터의 주택가격 급등도 이런 인구구조에 크게 기인했다는 분석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40대에 접어들면서 2000년 20.2%(929만8,000명)이던 40~54세 인구 비중은 2005년 23.2%(1,087만9,000명)로 급증했다. 5년 여 동안 이 연령대 인구가 158만 명이 늘어난 것. (이후 생략)
/ 유병률 기자 bryu@hk.co.kr


김대중도서관 후원회의 씨알님

인터넷 아이디 씨알님

항상 맑은 웃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김대중도서관 후원회의 기획위원을 하면서 뵈었다.

" 어이, 양형 잘 있었는가?" 하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보여 주시는 씨알님.

현재, DJroad 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을 열성적으로 흠모하는 사람이다.

전남 영광의 씨알참굴비 라는 업체를 운영하시고 있다.

씨알님은 참 바쁘시다. 영광에서 서울까지 한 걸음에 올라오시는 분이다.

본명은 한승주.

또, 한국국악협회 영광군지부 사무차장을 역임하시면서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는 노력도 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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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한반도 평화의 밤 행사 중에 김대중 전 대통령 접견 중에 씨알님의 모습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 함께

2006년 12월 12일 김대중도서관 후원회의 송년회 행사에 참석했다.

이날 행사 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영광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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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12일 화요일

은행통장재발행시 수수료 2,000원??

은행의 수수료 논란이 한참이었던 적이 있었다.
특히, 현금지급기에 대한 원가 논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은행에서 수수료를 받는 것은 참 다양하면서 어쩌구니 없는 것이 많다.
타행 이체시에도 수수료를 받는다.
또, 현금을 찾을때, 수표로 요구할때도 수수료를 받는다.

그런데 오늘 은행에 가서 또 놀란 것이 있었다.
휴먼계좌가 발견되었다. 돈이 남아 있어 정리도 하려고 은행에 방문했다.
3개중 2개 계좌는 해지하고, 1개는 사용하고자 통장을 분실, 재발행을 요구했더니,
발급 수수료가 2,000원이란다.

믈론 통장 기장이 넘칠 경우는 그냥 해준다고 하다.
그렇다고, 2,000원이라니...

2006년 12월 11일 월요일

"햇볕정책"은 결과적으로 한민족 모두에게 화해를 가져올 것(도널드 그레그 회장)

지난 12월 7일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개최된 "한반도 평화의 밤: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6주년 기념 및 미국 The korea Society 수여 2007년 Van Fleet 상 수상식"에서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 도널드 그레그(H.E. Donarld P. Gregg) 회장의 강연이 있었다.
이 강연에서 그레그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가는 의미에 대해 세계적 관심과 평가를 보여주었다. 특히, 미국 냉전을 종식하는 전략적 역할을 한 조지 케넌의 봉쇄정책과의 유사점을 언급하면서, "햇볕정책"의 중장기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의 강연 내용 일부를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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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서그레그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2007년 Van Fleet 상을 수여했다. >

<앞부분 생략>
미국조차도 남북전쟁 이후 인종간 분열 문제로 인한 부작용들을 오늘날까지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북전쟁은 146년 전인 1865년에 종식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반도에서 남북화해가 언젠가는 반드시 올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하고 비현실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는 한반도 통일의 과정은 무거운 짐을 높은 산위로 끌어올리는 것같이 몹시 힘든 과정(heavy lifting)이 될 것입니다.

6년 전 김대중 전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남한과 북한 모든 한민족에게 귀중한 선물이었습니다. 미래 관계의 창문이 잠시나마 열렸고, 열린 창문을 통해 한국 국민들은 북한을 예전보다 훨씬 더 선명한 관점에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전까지 얼굴도 없고 대적 불가능해보이던 적이 이제는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기 시작했고, 한국 국민들은 모든 분야에 있어 인간의 능력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성립시키는 큰 성공을 거두는 등 한국이 얼마나 북한에 앞서 있는지를 정상회담 이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 전대통령은, 남한과 북한 간의 상이한 사회, 정치적 구조를 볼 때 통일과정은 점진적이고 조심스럽게 진행돼야 한다는 현명한 주장을 했습니다. 정상회담 이후 늘어난 남북간 교류에 있어, 특히 개성공단을 고려했을 때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관한 중요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의 덕택으로 서서히 통일을 위한 기본틀이 마련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한국 내에서 남북정상회담과, 회담을 가져온 햇볕정책에 대해 회의, 심지어 비난도 일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최근 수개월동안 북한에 대한 적개심은 지난 7월의 미사일 실험 그리고 최근 평양이 주장한 북한의 핵실험 때문에 더 두드러졌습니다.

오래 지속되는 위기상황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오는 주요 사건들을 단기간에 판단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1954년 디엔비엔푸(Dien Bien Phu)전투에서 프랑스의 패배는 미국에 의해 완전히 잘못 해석됐던 경우입니다. 동남아시아의 식민시대의 종식이라는 원래의 의미로 보기보다는, 미 행정부는 이를 냉전의 한 단면으로 보고, 그런 판단 하에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 베트남전쟁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제가 사이공 근처 전쟁터에서 있었던 1972년, 저는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개방으로 이끌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우리는 한국전쟁에서 그랬듯, 베트남전에서도 중국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닉슨 대통령의 전략적 행동은 오늘날 그의 재임 중 최고의 외교적 성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당시 그의 행동은 타이완의 영향력 있는 단체들의 비난을 받았고, 대부분의 신보수주의 논쟁가들을 경악시키는 등 한동안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에서 혹자는, 재정적 부담이 너무 크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 답방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한국은 너무 많은 것을 준 반면 되돌려 받은 것은 없다고 지적합니다. 다른 이들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하고, 심지어 핵개발이 지속된 것은 김 전대통령의 햇볕정책의 책임이라며, 이로 인해 10월 9일 북한이 결국 핵실험을 했다고 비난합니다.

저는 이런 주장은 잘못되고 정당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전대통령은 평양의 정책 결정을 좌지우지하기는커녕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핵보유국이 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평양 내부정책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한국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미국에 대한 북한의 의심과 두려움입니다.

2000년 미국 대선 이후 워싱턴과 평양이 화해 움직임을 계속할 것이라는 김 전대통령의 희망은 2001년 부시 대통령과의 첫만남에서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2001년 9월 11일 테러 이후 세계에 대한 미국의 전망은 완전히 바뀌게 됐고,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햇볕정책을 어떻게 봐야 하며, 햇볕정책의 창시자인 김 전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입니까?

저는, 김대중 전대통령과 그의 햇볕정책, 그리고 조지 캐넌 (George F. Kennan)과 그의 봉쇄정책 간에 유사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1948년 미 국무성 정책기획 최고담당자로 있을 때 조지 캐넌은, 미국이 소련에 대해 봉쇄정책을 가하는 것만으로 소련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글을 발표해 큰 유명세를 탔습니다. 그에 따르면, 소련은 내부에서의 모순들로 인해 결국 붕괴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의 논리의 타당성을 주장했습니다. 1989년에 소련이 붕괴를 했고, 실제로 총 한방 쏘지 않고 냉전이 종식됐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조지 캐넌과 그의 정책은, 봉쇄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더 강한 강압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신랄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런 비판은 미국과 소련 조종사들이 공중전을 벌였던 한국전쟁, 케네디 대통령이 핵위기를 가속화시킨 것이라는 군사자문단의 충고를 거부했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1978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등, 미국과 소련 간의 위기상황 동안 특히 팽배했습니다. 위기 동안에도 “봉쇄”는 최소한 미국의 더 통찰력있는 전략가들에 의해 그 유효성이 유지됐고, 다른 정책들이 이행될 수 있는 우산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냉전 종식을 가져오는 데 기여한 핵협상의 장기화 등의 정책들이 이행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결국, 조지 캐넌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의 중요한 전략가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올해 초 101세에 사망했습니다.

햇볕정책 또한, 남북화해라는 장기목표가 다방면으로 이행될 수 있는 하나의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금강산 관광사업, 개성공단 등이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은 지금까지 남북 화해 노력에 있어 정점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남북정상회담의 장기적 중요성은 높게 인식되어야 합니다.
<뒷부분 생략>

* 도널드 그레그 H.E. Donarld P. Gregg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
51년 윌리엄컬리지 철학박사
73년 주한미국대사특보
82년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
89년 주한미국대사
93년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

아이들의 모습은...

지난 12월 9일 막내 동생 희정의 딸 서진의 돌잔치가 있었다.
민혁이, 형중이, 병준이..모두 비슷한 또래. 한살 터울이다 보니, 그 성장 과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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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8일 금요일

유은혜,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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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변화 요인 중, 가장 큰 부분이 여성의 사회 참여일 것이다. 이제는 여성 파워라는 말이 진부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남녀의 역할 규정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특히, 정치계의 여성의 역할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이미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이 여성으로써 처음으로 국무총리를 수행하고 있어, 명실상부한 여성정치시대를 열었다. 또, 각 정당에서 대변인 등 대국민 홍보 분야에 여성 정치인을 전진 배치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부대변인 중 한 사람인 유은혜씨도 그러하다.
부드러운 이미지로 딱딱한 공보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유은혜 부대변인은 서울 송곡여고, 성균관대 동양철학(81학번) 출신이며,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일산에 거주하면서 아침 8시 이전에 국회 대변인실에 출근해 그날 있을 논평 자료를 정리하고 회의 내용 등을 브리핑하는 것이 업무의 시작이다. 오후부터는 각 언론사의 기자들과 만나면서 현안 과제를 설명한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그녀의 업무 스케쥴은 남자들도 해내기 벅차보인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자들의 전화로 쉴새 없이 바쁜 모습에서 피곤이 역력하지만,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모습이다.

그녀는 흔히 말하는 386세대로 통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성대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오랜 기간 동안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해왔고, 1994년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 여성위원회 기획위원으로 제도권 정치입문을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유부대변인은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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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역할을 정치로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 특이하다. 특히, 김근태의원과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는 유부대변인은 사람을 중심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1993년 성대 민주동문회 사무국장을 하던 시절, 당시 같은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김근태의원과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작은 인연으로 시작해, 김근태의원 후원회 살림을 도맡아왔다고 한다. 그 후, 열린우리당 여성팀장으르 거쳐, 지금의 부대변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부드러우면서 당찬 이미지의 여성 부대변인하면, 김현미 열린우리당 의원이 떠오른다. 김현미의원 역시 지난 대선 당시 뚝심있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후, 국회의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흔히 정당의 부대변인을 하게 되면 의례, 출마설이 나돈다. 유부대변인도 역시 그런 말을 자주 듣게 된다는 것이다. TV방송을 통해, 얼굴이 알려지기 때문에 자리를 탐내는 사람도 많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으면 조금 당황스럽다는 표현을 한다. 아직 잘 모르겠다는 식. 조금 엉뚱한 대답이었지만, 몇 마디를 더 들어보면 정말 솔직한 말이구나 하는 느낌이 전해진다. 아직 현실 정치의 참여를 고민하고 있다는 정도로, 그녀는 생각을 정리해버린다. '아직 내가 필요한 곳이 그 자리일까' 하는 생각은 끊임없이하지만, 그 자리를 꼭 가야한다는 생각에 이르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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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송곡여자고등학교 졸업
1985년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졸업(81학번)

성대 민주동문회 사무국장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 여성위원회 기획위원
조순 서울시장 선대본 여성위원회 기획위원
고건 서울시장 선대본 총무위원회 총무부장
국회의원 김근태 후원회 사무국장
김근태의원 보좌관
한반대재단 사무국장
열린우리당 여성팀장
현,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김대중 전대통령 Van Fleet상 수상 기념 만찬 행사

한반도 평화의 밤 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6주년 기념 및 미국 The Korea Society 수여 2007년 Van Fleet상 수상식이었다. 행사는 12월 7일 그랜드 힐튼 컨벤션 센터에서 진행되었으며 김대중평화센터에서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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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 오늘 행사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국회의장, 국무총리, 여야 국회의원, 전직의원, 전직 국회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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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자리에 앉으분들 ^^

김경협 한국산업인력공단 감사님. 해맑은 웃음을 지니신 매력적인 분이다.
전, 민주노총 의장, 청와대 시민사회3수석 비서관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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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의 여성 파워~
유은혜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이다. 뛰어난 미모와 훤칠한 키로 시선을 압도하시는 듯하다.
유부대변인의 남편(^^) 장안식 아이디 대표님 왈, "우리 은혜는 멀리서도 찾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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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는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도널드 그래그 회장이 직접 밴 플릿상을 수여했다. 그래그 회장은 주한민국대사를 역임했던 분으로 미국 내 한국통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강연을 통해 햇볕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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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교 더브릿지 대표님
장시간의 행사와 긴 코스 요리로 심심하셨던지 연거푸 와인을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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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복, 탁정헌 선배님..
아이디 장안식사장님의 지인이고, 김대중도서관 발전위원으로 활동하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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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도서관 연구원 장신기

그리고 그 옆의 호기심 어린 표정의 김경협 감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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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만찬 축하 공연은 정훈희씨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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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내외분 접견 행사 중, 유은혜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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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접견 행사에 동참.
대한민국 정치계 큰 어른과 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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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7일 목요일

키티맘(Kitty Mam)

일본 캐릭터 '헬로키티'와 함께 성장한 세대를 가리키며,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의 젊고 높은 학력의 기혼 여성을 일컫는 말


당당한 키티맘 ‘5·31’도 바꾼다…25~34세 女투표율 男앞질러

[동아일보]
주부 심진숙(32·인천 부평구 부개동) 씨는 4월부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거의 매일 오전 동네 도서관에서 다른 주부들과 모임을 연다. 3월까지는 매주 금요일에만 책과 신문을 읽고 서로 의견을 교환했지만 최근 모임 횟수가 크게 늘었다.

이 모임의 주 활동 주제는 5·31지방선거에 출마한 예비후보들에 대한 검증이다. 회원 10여 명이 시구의원 후보의 경력과 공약을 분석하고 이들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심 씨는 또 시구의원 후보들을 찾아 △동네 도서관 신설 △아이들의 아토피 피부염을 막을 수 있는 청정한 환경 조성 △학부모 직영 급식 체제 등을 공약에 넣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20대 중반∼30대 중반 기혼 여성인 ‘키티맘’이 이번 지방선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키티맘’은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으며 사회의식이 강할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특성을 지닌다.

‘키티맘’은 직접 후보로 나서고 있으며 후보의 공약을 좌우하는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일 현재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광역자치단체의 예비 여성 후보자 98명 가운데 23.5%인 23명, 기초자치단체의 예비 여성 후보자 416명 가운데 32%인 133명이 키티맘이다. 같은 연령층의 남성이 전체 남성 후보자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10.4%, 7.9%에 불과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역대 지방선거의 투표율을 분석한 결과 키티맘 세대의 투표율은 같은 연령대의 남자에 비해 높으며 그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1998년 제2회 지방선거에서 25∼29세 투표율은 여자(31.4%)가 남자보다 1.8%포인트, 30∼34세는 여자(43.5%)가 남자보다 6.1%포인트 높았다. 2002년 제3회 지방선거에서는 25∼29세 남녀의 차이가 3.4%포인트, 30∼34세는 7%포인트로 더 크게 벌어졌다. 역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 때도 키티맘 세대의 투표율이 남자보다 높았지만 지방선거에서의 남녀간 차는 컸다.

이는 여성이 동네 일꾼을 뽑는 ‘생활정치’에 남성에 비해 높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이남영(李南永) 교수는 “키티맘 세대의 유권자들은 후보 선택 기준이 지지하는 정당이 아니라 자신에게 피부로 와 닿는 보육, 육아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각 정당과 후보자들은 키티맘을 사로잡기 위한 각종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후보들은 앞 다퉈 보육시설 확충과 아토피 피부염 유발 환경 척결 등 자녀 양육 문제, 영어캠프 신설과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 확충 등 교육 문제, 학교 급식 문제 등에 대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정계 개편을 앞둔 여당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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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구도 변화는 정말 조석변개같은 것일까?

열린우리당이 처음 표방한 목표가 100년 정당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4년도 안돼 새로운 창당 논의를 하고 있다. 외국의 정치사를 보면, 양당구조로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쉽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탄핵사태 이후, 분당은 가속화되었다. 그리고 창당 수순이 진행되었다. 이른바 천신정이라는 당 개혁 세력이 주도했다. 이들은 민주당 시절 당쇄신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창당을 동의하는 국회의원 등이 모여 결의 속에 새로운 정당, 열린우리당이 이루어졌다.
오랜 시간 동안, 의원들은 분임 토의를 했고, 역사와 한국 정치의 발전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중심으로 창당에 대한 논의를 거쳐 또다시 새로운 정당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제 다시 열린우리당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사그러들려고 한다.
그 시발점은 당과 청와대 사이의 부조화일 것이다. 제왕적 정치 구도, 계파적 정치 등을 파괴하겠다고 나선 노무현 정부이지만, 그 거리를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새로운 갈등을 야기했다. 청와대는 큰 그림의 정치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지역주의타파. 여의도에 들리는 말에 의하면, 노무현대통령은 지역주의가 한국정치를 망하게 하는 온상이고,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면, 자리를 내 걸고서라도 이루겠다는 했다는 것이다. 어떤 소문에는 대통령의 영남 출마설도 나왔다. 즉,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지역주의 구도를 청산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영남에서 국회의원을 출마하겠다는 것이다. 잔다르크식 돌격론이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갈등은 이러한 정치적 목표에서 차이가 드러나면서, 대화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 정부는 차기 권력에 대한 고민보다는 지금의 정책적 목표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돌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국민과의 여론 격차를 좁히기보다는 선도적 정책, 장기적 정책을 앞세우게 되었다. 최근의 부동산과 관련된 경제 정책이 삐그덕거리는 이유가 그러하다. 또, 행정도시 이전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보였다.

국가의 먼 장래를 봤을때, 이러한 중장기 정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숙의'와 '대화', '설득'이라는 세 꼭지점이 어우러지지 않는다면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청와대의 기본 방향에 대해 야전 사령부의 역할을 하는 여당이 동의하지 않고, 전투에 임해주지 않기때문에 국민들의 혼란을 가속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계 개편은 이미 기정사실화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당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념과 어떤 정치 신념을 만들어갈 것인가이다.

노무현의 편지, 트로이목마가 될 듯...

우리 모두의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열린우리당 당원에게 드리는 편지 
 
  친애하는 당원 여러분.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의 ‘임기’와 ‘당적’ 관련 발언에 대해 정치권과 언론에서 갖가지 발언과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여야 모두 대통령의 ‘책임’을 다하라고 하고, 여당 지도부는 ‘정치는 당에 맡기고 국정에 전념하라. 당이 나갈 길은 당이 정할 것이니, 당원은 결론을 존중하라’고 합니다. 언론은 대통령의 ‘탈당’과 ‘당·청 결별’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당원 여러분의 마음 또한 매우 무겁고 안타까울 것입니다. 이에 당원 여러분께 국정과 열린우리당 문제에 대한 제 발언의 취지와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통령의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대통령의 직분이 무엇이고 그 책임과 무게가 얼마만한 것인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 대통령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상황도 분명합니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 한나라당이 흔들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물론 야당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정책적 대안도 없고, 대화나 타협도 거부하고, 국회의 절차도 거부하니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사학법 개정 이후 1년여 동안 중요한 법안의 대부분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정상적인 국정수행이 어려웠습니다. 차라리 국회에서 부결되면 그에 맞추어 국정을 수행할 것입니다. 찬성도 반대도 없이 결론을 내주지 않으니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산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이 특별히 열심히 하려고 하는 일의 예산을 다 깎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혁신관련 예산은 모두 깎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해마다 예산을 제때 통과시켜 주지 않아서 전국의 행정이 새해 1월 중순까지 발목이 잡히니 새해의 계획도 차질이 생깁니다. 올해에도 또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권도 제대로 행사할 수가 없습니다. 사사건건 시비가 걸리고 발목이 잡힙니다. 그 중에서도 대통령과 뜻이 맞아야 하는 자리일수록 더 심하게 흔들고 발목을 잡습니다. 여야에서 모두 관리내각, 중립내각, 거국내각 등 여러 가지 제안이 무성합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여야 간의 합의가 없는 한 실행이 불가능한 제안들입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이런 저런 제안만 해놓고 의논해 보자고 하면 거부합니다. 인사권마저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면 대통령의 직무수행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생각이나 호흡이 맞지 않는 사람과 책임 있게 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당 사람들도 이런 사정을 다 알지는 못하는 모양입니다. 가끔 야당과 같은 주장을 할 때는 답답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반대나 비판만 하는 것과 실제로 일을 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 주면 좋겠습니다.

이런 국정수행의 어려움은 비단 참여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역대 정부 후반기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야당의 정치공세와 여당의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국정이 어려웠습니다. 문민정부 말기에는 정치권이 대통령 선거에만 몰두하고 여권이 분열되는 등 국정운영이 표류하면서 6·25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IMF 외환위기를 겪은 바 있습니다. 국민의 정부 후반기에도 야당의 공세로 당시 통일부장관이 해임되고, 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두 번이나 연속적으로 부결되면서 정부가 제대로 일할 수 없었고, ‘신용불량자 급증’ 등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웠습니다.

국정의 표류가 반복되는 구조적인 문제 생각해 보아야
저는 이런 일을 결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만의 다짐과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이 문제가 단지 대통령 개인의 능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정치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소야대, 그것도 지역구도하의 다당제와 결합된 여소야대라는 최악의 정치구도가 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88년 13대 국회 이후 한국정치는 국회의원 선거마다 여소야대 구도가 만들어졌습니다. ’04년 17대 총선에서 여대야소가 되었지만, 재·보궐선거와 탈당 등으로 다시 여소야대로 전환되었습니다. 과거 유신독재에서는 유정회에 전체 의석의 1/3을 배분하고, 5공 신군부 하에서는 제1당에 비례대표의 2/3를 배정하는 ‘강제적 여대야소’를 통해 국회를 지배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여소야대는 지역구도하의 다당제와 결합되어 정당간의 정상적인 경쟁과 협력정치를 근본적으로 어렵게 합니다. 정책이 다르다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책보다 지역간의 정치적 대립과 불신에 바탕한 지역구도는 대화와 타협을 불가능하게 하고, 규칙과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정치를 낳습니다.

아직도 ‘대권’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이제 한국에서 ‘대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국정에 관한 권한은 대통령과 국회가 나누어 갖고 있습니다. 국회는 법률안 및 예산안 의결권, 각종 비준 동의권, 총리 및 주요 직위의 임명동의권과 각료의 해임건의권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과 국회간, 그리고 여야간에 대화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국정이 표류하고 마비됩니다. 그런데 지역구도하의 대결적 여소야대가 대화와 타협 정치를 봉쇄하고 있는 것입니다.

13대 국회 이후 집권세력은 여소야대에 봉착하자 ’90년 3당합당이나 ‘의원 빼오기’와 같은 방법으로 ‘인위적 여대야소’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정치불신과 대결을 가중시켰고 참여정부가 청산한 대표적인 구시대 정치문화입니다.

다당제가 보편화된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여소야대를 연합정치를 통해 해결하고 있습니다. 정책적 협력과 권력 공유를 통해 책임 있는 다수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물론 양당제 국가인 미국에서는 여소야대가 많이 나타나지만, 대통령과 국회, 대통령과 야당, 대통령과 개별의원간의 교섭과 타협이 정치문화로 자리 잡고 있어 한국과 같은 심각한 국정 교착과 표류 상황이 일상화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뿌리깊은 집권 對 비집권의 이분법적 구도로 여야가 갈라지고, 또한 대립과 불신의 지역구도를 통해 대결 정치가 구조화되어 있습니다. 제가 지난해 연정을 제안했던 것은 야당과의 협력과 타협을 통해 국정의 교착상태를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연정은 합당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연정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면서도 경쟁하는 것입니다.

물론 참여정부에서 연정은 불가능한 상태이고, 제가 다시 제안할 수도 없지만 연합정치는 한국정치의 발전과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언젠가는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독재정권이나 제왕적 대통령제처럼 대통령이 정국을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구조와 상황이 아니라면 여야의 협력을 통해 국정의 교착을 풀어나가야 합니다. 더욱이 참여정부는 당정분리의 원칙 아래 대통령이 과거처럼 여당을 지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야당은 연정도 거부하고, 여·야·정 정치협상같은 대화와 타협 제안마저 거부하고 있습니다.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도, 표결을 통해 결론을 내주지도 않는 상황이 되풀이되어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이 대통령에게만 혼자 책임을 다하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저는 ’87년 이후 반복되고 있는, 지역구도와 결합된 대결적 여소야대 구도와 국정의 표류현상은 다음 대통령도 직면하게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권과 언론,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서 이제 한국정치의 구조적인 문제와 해결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별화’와 ‘탈당’은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제가 당적 문제를 이야기한 것은 임기 말에 대통령에 대한 차별화 전략과 탈당 압박 속에서 마침내 당적을 포기한 역대 세 분 대통령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언론에 탈당이 기정사실로, 나아가 당정 결별로 보도되어 해명을 했습니다만, 이 문제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대의를 강조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 열린우리당이 처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 책임을 통감합니다. 특히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높지 않아 매우 송구스런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통령에게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창당 이후 지난 3년여 동안 아홉 차례나 당 지도부가 바뀌었습니다. 지도부가 제대로 일을 해보지도 못하고 각종 선거 패배 혹은 언론의 뭇매 등으로 사퇴하는 혼란이 지속되었습니다. 주요 정책과 노선에 대해 당론을 결집하기도 어려웠고, 매사 지도부를 흔드는 조직윤리의 부재현상 또한 적지 않았습니다. 당의 정책과 노선이 정립되지 못하고, 지도력이 흔들리고, 조직윤리가 이완되면서 당원과 국민들에게 준 실망감은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당이 처한 여러 가지 어려움은 대통령과 당 지도부, 당원 여러분 모두 책임을 다하면서 함께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정부에서 여당은 어려움에 처하자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특히 현직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에 부담을 느낀 대통령 후보들이 차별화에 앞장섰습니다. 노태우 前대통령도, 김영삼 前대통령도 차기 대선 후보의 차별화와 탈당 압박 속에 당적을 버렸습니다. 지난 국민의 정부에서도 김대중 前대통령이 총재직을 사퇴하고 탈당하는 불행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차별화와 정부-여당의 균열은 당의 지지도나 대통령 후보들의 지지도를 올리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당 지지도와 후보 지지도, 국정 지지도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권의 분열과 대통령의 고립으로 인해 책임정치가 실종되고, 국정통제시스템이 와해되어 IMF 외환위기와 신용불량자 양산 등의 어려움을 낳는 한 배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참여정부와 역대 정부는 다른 조건이 많습니다. 임기 말 역대 정부의 도덕성을 뿌리 채 흔들었던 권력형 비리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또한 당정분리 원칙을 세우고 당무에 개입하거나 여당을 통제하지 않았기에, 과거처럼 대통령에 대한 여당의 권력투쟁이 발생할 이유도 없습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의 책임, 그리고 당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싶습니다. 함께 책임의식을 갖고 국정과 당의 어려움을 성찰하고 책임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영남당도 호남당도, 지역당은 안됩니다
정계개편이나 통합신당을 주장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우리당의 정책적·역사적·법적 정체성을 유지·변화·발전시켜서 국민 속에 뿌리내리는 논의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논의는 어떤 가치와 정체성을 지향하는지, 이에 참여하는 새로운 세력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른 바 ‘통합신당’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리고 어떤 세력이 새롭게 참여하는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민주당이나 특정 인물이 통합의 대상으로 거론될 뿐입니다. 결국 舊민주당으로의 회귀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중산층과 서민, 남북화해협력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지역주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자기희생의 결단을 통해 만든 정당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지역주의 정치구도는 대립과 불신을 통해 국민을 분열시키고, 정치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지역단위에서는 경쟁을 사라지게 하여 민주주의를 실종시킵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고자 기득권을 포기하고 결단했던 우리당이 다시 지역구도에 기대려 한다면, 이는 역사와 국민과 당원에 대한 도리가 아닙니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 등을 통해 완화되고 있는 지역구도가 내년 대선과 맞물려 다시 강화되고 고착화될 것이란 우려를 지우기 어렵습니다.

물론 정당은 선거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당의 정체성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당의 진로와 방향은 그 형태가 어떠하든 정책과 노선을 어떻게 변화·발전시킬 것인지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동안 우리당이 보여준 지도력의 훼손과 조직윤리의 실종을 바로 잡는 노력부터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당 지도부나 대통령 후보 희망자, 의원 여러분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당헌에 명시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통적이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게 정당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입니다. 저도 당원으로서 당의 진로와 방향, 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노선에 대해 당 지도부 및 당원들과 책임 있게 토론하고자 합니다.

국정도 어렵고 당 또한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역사의 진보와 시대정신 구현을 위한 열린우리당과 당원 여러분의 역동성과 저력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12월 3일 아침

노 무 현 드림


* 노무현대통령이 해외순방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에 보내는 편지를 공개했다. 지난 대연정 의중을 드려낸 편지에서처럼 또다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스타일을 보여준 것이다. 이른바 "독고다이"식 국정 운영이 아닌가 생각한다.

1. 편지는 왜 썼을까?
편지의 내용에는 최근 열린우리당의 신당창당이 숙의과정없이 일정 정파에 의해 주도되는 것을 막고, 당원들의 민주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당 중심의 탈당-창당 과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의 일련의 프로세스에 대한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당
원들이 빠진 논의라고 하지만, 이미 열린우리당에는 당원이 없다. 이미 정치적 구도 개편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다음 정권의 세력 변화의 조명탄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구도 속에선 어떤 희망도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원에게 물어본다면,,
모든게 실망이다. 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열린우리당에서 무엇을 찾기에는 너무 멀리갔기 때문이다.
평당원으로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생각, 이젠 버려야 할 것이다. 물론 현직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새로운 권력을 세우겠다는 것,,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국민의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당원이 아니라 국민과 소통해야 할 것이다.

2. 편지는 무엇을 줄 것인가?
편지가 공개된 후, 당지도부 특히 김근태당의장에 대한 각이 시퍼렇게 섰다고 말한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듯하다. 차기 대선 후보자들과 현직 대통령간의 갈등이 언론은 재밌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편지는 정개개편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으로 잠입한 '트로이 목마'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미 당 지도부와 청와대의 갈등은 심각해졌다고 한다. 또한, 소극적 태도로 대응했던 친노그룹의 의원들도 다시 이 편지를 계기고 깃발을 높이 세우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번 기간당원제에 대한 당규 삭제 부분을 이유로 당원 일부도 친노적 목소리를 다시 내고 있다. 지형이 변화하고 정개개편에 대한 구도가 변화했다. 그것은 혼란을 불러일으켜 자중지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3. 갈길을 갈지?
사실 정개개편을 주도하는 측은 시기를 놓친 것은 사실이다. 이만큼 갈등의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지면 사실, 재혼도, 동거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헤어질때라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말아야 다시 만나도 좋은 추억이 남는 것인데...
청와대의 대북송금 등의 일련의 작업에서도 드러났지만, 과거의 인연에 대한 칼날이 너무 아프다.
이제와서 자기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프더라도 돌아설 줄 알아야 한다. 현 지도부는 과감한 논의 과정을 통해 일치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 방식은 당원이 아닌, 국민을 바라보는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숙의가 마친 후에는 일초도 아끼지 말고 가야 한다.
옛날 얘기에도 나오듯이 '돌아보지 말라 했는데, 돌아보면 망부석이 되듯이' 깨끗하게 갈길을 간 후에 인연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2006년 12월 1일 금요일

서정주의 시 "내리는 눈밭에서"




내리는 눈밭에서

                                                          - 서정주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폭으은히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낯이 붉은 처녀아이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운명들이 모두 다 안기어 드는 소리


큰놈에겐 큰눈물 자죽
작은놈에겐 작은 웃음 흔적
큰이얘기 작은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그리며 안기어 오는 소리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속에서는
산도 산도 청산도 안기어 드는 소리


대학원시절에 본 영화인 것 같다.

영화 <청춘>.

그 영화에서 나오는 서정주의 시편이 갑자기 생각나서 기록해 본다.



2006년 11월 29일 수요일

미국인이 많이 쓰는 영어표현

1. 맞아, 물론이지
You bet./ Absolutely.
2. 너나 잘 해
None of your business.
3. 뒷북치지마
Thanks for the history lesson.
4. 어제 필름이 끊겼어
I got blacked out yesterday.
5. 그 사람 그거 참 잘~ 됐다(그게당연하다). 쌤통이다
He deserves it.
6. 니 맘대로해. 니 하고픈 대로 해
You are the boss!. It's up to you.
8. 니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니?
How could you do that to me?
10. 거기 물 좋다
That place rocks! That place kicks!
11. 어떤 대화상에서 허무하게 끝나버렸을때"그게 다야?, 그게 전부야?"
That's it? /Is that all?
또는 이게 전부입니다. 끝입니다.
That's all, That's it.
12. 너도 내 입장이 되어봐
Put yourself in my shoes. Let's shift/ change our ground.
13. 음식 잘 먹었습니다.
I've never eaten better.
14. 야, 친구 좋다는 게 뭐야?
Come on, what are friends for?
15.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난다 .
It was so touching, I almost cried.
16. 미안해 할 것까지는 없어.
There's nothing to be sorry about.
17.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It couldn't be better than this!
19. 섭섭(실망)하지않게해드리겠습니다!
You won't be disappointed!
20. 나를 만만하게 보지마
Don't you think I am that easy. (you에 강세)


21. 니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That's what you always do.
22. 분위기 파악 좀 해라, 인간아
Consider your surroundings, you fool.
23. 두고보자.
Just wait! I'll get (또는 pay) you back.
24. 이번 한 번만 봐준다
I'm gonna let it slide only this time.
25. 쟤는 어디가도 굶어죽진 않겠다.
He will never starve anywhere.
26. 너무많은걸 알려고하면 다쳐
You'll get hurt if you try to know too much.
27. 제발 잘난 척 좀 그만해
Stop acting like you're all that.
28. 장난이 좀 심하군
The joke is too harsh.
29. 말장난 그만 합시다.
Let's stop playing word games.
30. 내가 만만하게 보여?
Do I look like I am easy?
31. 몸이 찌뿌둥하다
I feel heavy.
32. 오해 하지 마세요
Don't get me wrong.
33. 기가막혀 말이 안나오네.
It's so outrageous I can't say a word.
34. 니 맘대로 하세요
Suit yourself.
35. 아직 옛날 실력 안 죽었어
I've still got it. (it은 옛날 실력을 의미)
36. 넌 이제 죽었어
You are dead meat!
37. 너 들으라고 한 소리 아냐
Don't take it personally.
39. 알랑거리지마
Don't try to butter me up.
40. 배째
Sue me!


41. 그게 어딘데?
That's better than nothing.
42. 머리뚜껑이 열렸다.
My head is about to open.
43. 그녀는 이중 성격을 가졌어
She has a multi-personality. (또는 split personality)
44. (나에게) 너무 심한 것 아니예요?
Don't you think you are too harsh?
45.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You don't have to do all that.
47. 나도 맘이 편하지는 않아.
I don't feel well(good) about it, either.
48. 그다지 썩 내키지는 않는데.
I don't feel like doing it.
49. 생각보다 '별로'인데...
It's not as good as I thought. (expected)
50. 몸살에 걸려 온몸이 쑤신다.
My whole body aches.
51. 그 사람 똥배가 나왔어.
He has a big,pot belly.
52. 저 사람은 인간이 왜 저래?
What's wrong with him?
53. 바늘로 꼭꼭 찌르는 것 같다.
It feels like a needle poking me.
54. 걔 원래 그런 애야
He's usually like that.
55. 너 삐졌니?
Are you mad at me? Are you pissed off?
56. 이 싸가지 없는 녀석아
You have no respect.
57. 그는 밥만 축낸다
You are not worth feeding.
58. 그는 성격이 털털하고 시원시원하다.
He has an easy-going and cool attitude.
59. 있는 척 좀 하지 마.
Don't act like you are rich.
60. 저 애는 내가 찍었어.
That boy is mine. He is on my list.


61. 내 입장이 정말 난처해.
My position is very uncomfortable.
62. 그녀는 마음을 잘 주지 않고 튕겨.
She's playing hard to get.
63. 그는 뒤로 호박씨 깐다.
He does something in people's back.
65. 놔둬 그냥 그러다가 말겠지 뭐
Leave him alone. He'll stop it eventually.
66. 이 숙제 정말 짜증난다
This homework is very tedious.
67. 너무 오바 하지마
Don't go too far.
68. 그냥 그렇다고 해, 뭘 자꾸 따져?
Just say it, don't argue.
69.넌 왜 맨 날 그 모양이니?
Why are you always like that?
70.뭐 이런 놈이 다 있어~!
What kind of person is this!
71.저 사람 변태 아니야?
Isn't he a pervert?
72.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
Kids grow up fighting all the time.
73.어휴~ 난 이제 죽었다
Man.. I'm dead now.
74.옷이 촌스럽다
Those clothes are out of style.
75.기본부터 돼 먹지 않았다.
It was wrong from the beginning.
76.누구 맘대로?
With whose permission?
77.아! 사는 게 왜 이럴까.
Why is my life like this?
78.그 여자는 너무 코가 높아 (콧대가 세다/도도하다).
She's too snobby.
79.내 일은 내가 알아서 다 할거야.
I'll take care of my business.
80.뭐 찔리는 거라도 있는 거야?
Are you hiding something?


81.내 방은 지저분해서 발 디딜 틈이 없어
My room is so messy, there is no place to step.
82.넌 꼭 그런 말만 골라 하는군.
You always choose that type of words.
83.찍어둔 사람 있습니까?
Do you have someone in mind? (anyone: 있는지 없는지 모를 때)
84.너 시치미 떼지마.
Don't you try to lie. (you 에 강세)
85.그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다
He is full of self-confidence.
86.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시켜 줘.
Hook me up if there's a good person.
87.누가 니 성격을 받아주겠니.
Who would put up with your attitude?
88.결코 고의가 아니었다.
I didn't mean to do that. / It's not what I mean.
89.넌 배신자다.
You are a traitor!
90.다 티 난다.
Everything shows./ It's too obvious. / You can't hide it.
91.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How long could it last?
92.그래서?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니?
So? What do you want me to do?
93.이젠 돌이킬 수가 없다. (소용없다)
You can't turn it back now.
94.사랑이 식었구나
The love has died.
95.우리 사이가 애매하다..
I don't know what kind of relationship we have.
96.내 말 안 듣더니, 그래 꼴 좋다
You didn't listen to me, now look at you!
97.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안 돼
You're not supposed to talk like that.
98.전 간지럼을 잘 타요
I am ticklish.
99.마음이 붕 떠 있어서 일이 손에 안 잡혀.
I'm so excited, I can't work.
100.어휴! 넌 아무도 못 말린다니까~~~!
Ah, nobody can stop you.


101.내 모든 걸 걸었어
I put everything into it.
102.너에겐 내가 있잖아
But you've got me.
103.원샷!
Bottoms up!
104.왜 너 찔리니?
Why? You feel guilty?
105.그녀에게 뿅갔어
I got a crush on her!
106.쪽 팔리는 줄 좀 알아라
Shame on you!
107.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다 I
It could've been worse than that.
108.그는 골칫 덩어리야
He's a pain in the neck (속어로는 neck 대신 ass).
109.그걸 꼭 말로 해야되니?
Do I have to make it explicit?
110.난 타고난 체질이야
I was born for this.
111.아까워라!
What a waste!
112.너 제정신이니?
Are you out of your mind?
113.너 뭔가 믿는 구석이 있구나.
You've got somebody behind you, huh?
114.이거 장난이 아닌데!
Man, this isn't a joke!

* 정말 필요한 표현입니다. 우리가 배운 영어와는 다른 일상적인 거.

2006년 11월 27일 월요일

대선 1년전 여론조사의 허와 실

현 시점엔 유효, 대선결과 예단 일러
‘대선 1년전 여론조사’의 허와 실
2006-11-23 오후 2:08:35 게재

미래 돌발변수와 그에 따른 민심의 역동적 변화 반영 못하는 한계
97년 박찬종, 2002년엔 이회창 1위 … 실제론 김대중·노무현 당선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가 되면 각종 언론들은 앞다퉈 대선 관련 여론조사를 쏟아낸다. 누가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지, 여야 유력 후보는 누가 될 지, 또 그들이 맞붙는다면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지 등등….
이같은 여론조사들이 대선 판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 자체가 곧 대선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맹신은 금물이다. 정치가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대선은 그 생물이 끊임없는 상호작용으로 용트림을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고3 수험생이 수능시험을 앞두고 수차례 ‘모의고사’를 치르지만 ‘모의고사’ 성적이 곧 대학 합격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97년 1월, 박찬종-김대중-이회창 순 = 97년 대선 때의 일이다. 그해 1월 동아일보 자매지 ‘신동아’는 현대리서치와 공동으로 전국 성인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 관련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당시 집권여당 신한국당에는 ‘9룡’이 대권을 향해 군웅할거하고 있었고, 야권에서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네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여야 후보들이 모두 대통령 선거에 나온다면 누구를 찍겠느냐’는 물음에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이는 박찬종 신한국당 상임고문이었다.
박 고문은 20.2%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19.2%)를 근소한 차로 앞질렀다. 다음으로는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상임고문이 12.0%로 3위를 기록했고, 조순 서울시장이 6.2%로 뒤를 이었다. 신한국당 주자들만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박찬종·이회창 고문 순이었다.
‘세계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여야 후보를 망라한 조사에서 박찬종(27.4%)-김대중(20.4%)-이회창(19.0%)순이었다. ‘한겨레’가 실시한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가장 바람직한 인물’을 묻는 조사에서는 박찬종(33.5%)-이회창(25.2%)순이었고, ‘한국일보’ 조사에서도 박찬종-이회창-이홍구 순이었다.
이같은 조사가 발표된 이후 정치권의 상황은 급변했다. 상도동계의 좌장이었던 최형우 고문이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깜짝 놀랄 젊은 후보’ 이인제 당시 경기지사가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여기에 TK출신 김윤환 고문이 ‘킹메이커’를 자임하며 이회창 후보 만들기에 앞장서면서 신한국당 경선 판도는 급격히 이회창 대세론으로 기울었다.
줄곧 2등을 기록하던 김대중 총재는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문제가 불거진 이후 지지율 1위로 올라선 이후 이인제 후보의 독자 출마와 ‘DJP연합’을 통해 20만표차로 대선 승리를 거머쥐었다.

◆‘노풍’ 예상 못한 2002년 1월 여론조사 = 2002년 대선 여론조사 결과 역시 실제 대선 결과와는 큰 편차를 보였다. 대선이 치러진 2002년 1월까지만 해도 2000년 총선 이후 이회창 총재가 30%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었고, 여당에서는 이인제 고문이 거의 유일한 대항마로 인식돼 있던 시점이었다.
2002년 1월 ‘한국일보’가 ‘차기 대통령감으로 적합한 인물’을 묻는 질문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31.7%로 부동의 1위를 달렸고, 민주당 이인제 고문이 16.8%로 2위,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8.3%)-민주당 노무현 고문(8.2%)-고 건 서울시장(4.6%)-무소속 정몽준 의원(4.4%)-민주당 정동영 고문(2.5%) 순이었다.
‘내일신문’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2002년 1월 조사에서는 당시 집권여당인 새천년민주당 차기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도를 묻는 질문에 이인제 고문이 37.8%로 가장 높았고, 노무현 고문(18.2%)-고건 서울시장(13.4%)순으로 나타났다.
‘경향신문’ 조사에서도 이인제(24.8%)-노무현(14.9%)-정동영(8.1%) 순이었다.
이들 여권 예비후보들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의 1:1 가상 대결에서는 이인제 고문과의 가상대결에서만 오차 범위 내에서 근소한 차로 앞섰을 뿐, 이 총재가 여타 모든 여권 후보를 큰 격차로 앞섰다.
‘서울신문’ 조사에서는 ‘여당 대선 후보로 누가 유력한가’라는 물음에 이인제 고문이 44.6%로 노무현 고문(11.5%)을 세배 이상 크게 앞질렀고, 2002년 2월 실시한 ‘세계일보’ 조사에서도 이같은 큰 격차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세계일보’ 조사 한달 뒤 실시된 국민경선에서 광주 경선을 기점으로 ‘노풍’이 점화됐고 광주 경선 이전까지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는 ‘그땐 그랬지’라는 구문이 되고 말았다.
97년과 2002년 두 번의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실시된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대선 과정에 얼마나 여론의 진폭이 클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높은 지지율에 기대 안주하는 선두주자 지지율의 불안정성과 추격하는 후발주자가 여론의 역동성에 힘입어 급부상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2007년 대선 과정 역시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가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계기로 여론이 널뛰기를 할 지, 앞서가는 주자는 이같은 변화 가능성을 어떻게 대비할 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구자홍 기자 jhkoo@naeil.com

2006년 11월 24일 금요일

"국가정보원의 국내 인터넷 감시 추진" 왜 그러니?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국가정보원이 국내 인터넷 전체에 대한 감시를 추진중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24일 국회 정보위 소속 한나라당 송영선(宋永仙) 의원이 국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정원은 "국내 불특정 지역에서 사용되는 인터넷 간첩통신을 색출하기 위해서는 국내 인터넷 통신 전량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통신비밀보호법상 허용되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선진국의 법 체계 및 감청 시스템 사례를 연구해 대응 방향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송 의원은 "국정원이 현재 대공용의자에 대한 제한적 감시만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체 인터넷 감시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는 처음"이라며 "인터넷 통신비밀과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 등이 제기될 수 있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놀라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국가정보원이  이러한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놀랄 일이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나온대로라면 단순히 공상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모색해보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보인다.

예전에 미국 CIA가 전세계의 이메일을 감시할 수다는 말이 있어 논란을 빚었다. 9.11 이후 테러 위협이라는 끔직한 신공안 정국에서 나온 말이지만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최근, 한 선배가 구속된 적이 있었다. 그 선배말로는 자신의 하드, 포탈 메일 계정의 이메일이 모두 자신 앞에 놓여졌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자신이 지운 것도 나왔다는 것이다. 이전에 방송에서 들은 바로는 자신이 지웠지만, 컨텐츠 백업용 자료가 보관되어 수사용으로 제출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용자가 시스템 상에서 지웠다고 해서, 지운 것이라 맘 놓지 말라는 것.

이미 나는 매일매일 정부의 관리를 당하고 있다. 그리고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는다.
내가 버스를 타고, 핸드폰을 통화하고, 메신저를 하고, 메일을 발송하고...
이런 과정에서 나는 감시당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감시하고자 한다. 이것은 국민을 마치 범죄자처럼 선고하는 불순한 의도가 아닐 수 없다.

요즘은 1980년같은 느낌이다.

위에 언급한 선배가 구속되고 나서, 한달뒤에 집으로 검찰에서 통고가 왔다.

"당신의 핸드폰 위치 추적했습니다"

정중하지도 않게, 아주 기분나쁜 편지 한장.

2006년 11월 22일 수요일

웹2.0과 매니페스토

최근 읽고 있는 <웹2.0 시대의 기획, 시맨틱웹>(김중태 저)를 읽으면서 웹2.0의 철학적 의미를 느끼고 있다. 저자 김중태는 나름대로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의미론적 고찰 방식으로 웹2.0 혹은 차세대 웹철학이라 할 수 있는 시멘틱웹을 주창하고 있다.

김중태는 시멘틱웹의 주요성을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기제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한 사고의 확장에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이 책에는 <공개>와 <공유>라는 정보에 대한 정신이 다름 세대의 시대 정신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조금도 과장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정보의 가치가 새로운 생산을 만들어 내는 주축이 되어 있다. 이것은 90년대말부터 정보화사회라는 이름으로 강조되어 왔던 것이지만, 이렇게 빨리, 그리고 핵심이 될 것이라 짐작하지 못 했을 것이다.

내가 인터넷과 문화, 그리고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대학원 시절, 2000년이다. 이때부터 인터넷의 사회적 의미를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연구가 서서히 시작되었다. 오프라인의 사회적 기제가 온라인과 대립되는 양상이 주된 연구 관심이었다.  즉, 오프라인의 정신적 욕구를 가상사회인 온라인에서 대리 만족할 수 있다는 식의 '대리자' 역할이 문화적 측면에서 본 인터넷 연구였다.

그 당시,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도, 이러한 맥락에서 유사했다. 현실 정치에서 충족되지 못한 정치적 행위, 욕구 등이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으로  이전되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공간은 현실과 가상세계 간의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러한 논리 속에는 현실과 가상 세계의 그것 간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존재했다. 이런 경계선은 바로 두 공간이 섞일 수 없는 분리된 존재라는 전제 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삶은 어떤가?
'유비쿼터스'라는 단어로 설명하지 않더라도, 이제 온라인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 과정이 오프라인 세계의 침투가 만들어진 것인지, 온라인의 점령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미 온-오프라인은 하나가 되어 '세상은 네트워킹'되어 있다는 것이다.

네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 버스카드, 메신저로 나라는 존재는 이미 네트워킹되어 있다. 누가 나를 찾더라도, 네트워킹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

김중태의 시맨틱웹에서 의미론적 사고 방식을 재밌게 봤다. 구별과 차이라는 라깡의 정신분석학적 철학을 과거 배웠던 나로써는 매우 신기할 따름이다. 인문학적 패러다임이 과학의 영역에도 보인다는 점이다.

시멘틱웹의 대표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블로그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쓴 글에 트랙백이 붙으면서 원본성은 유지하면서 다양한 네티즌들의 평가와 차이가 만들어져 새로운 컨텐츠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블로거들이나 현대 인터넷 유저들은 이러한 공간 활동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하나로 정치권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얼마전 기사로 작성했던 '매니페스토 운동'이다. 어제 국회에서는 매니페스토 운동을 공직선거법에 반영하기 위한 법안에 대한 토론을 했다. 법안 안에는 의미적 함의를 발견할 수 없었지만, 토론회 이후에 가진 자리에서 이것도 웹2.0의 한 방식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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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매니페스토 연구회(회장 배기선의원)에서는 국회 귀빈식당에서 매니페스토 입법안에 대한 토론회를 가졌다. >

이 모임의 주최자였던 배기선 의원은 모두에서 정보의 중요성과 국민적 참여라는 패러다임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제 정보의 양이 너무 많고, 국가가 독점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독점할 수도 없는 현실을 봐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중의 참여와 평가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전의 독재국가는 바로 권력과 정보의 독점, 소통의 단절을 통해 '공포정치'를 강행했고, 국민의 민주적 참여를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일당, 일인 독재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다양한 정보와 대중의 참여 공간의 확대로 진실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언론이나 국가 권력을 통해 국민을 속일 수 없다는 점이다. 거짓 정보를 언론을 통해 주더라도, 국민은 나름대로의 신뢰 평가를 통해 그 허위를 밝혀 내고 걸러서 수용하고 버리고 하는 구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부서 시작된 매니페스토 운동은 그런 면에서 조금 늦은 것이지만(항상 정치권은 현실의 보수적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서 느린 것은 어쩔 수 없다)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국민의 정보 수용 기준에 적합한 논리와 증거를 내세우지 않는 후보자 공약과 정보에 누가 투표를 하겠는가? 지난 선거에서 보여준 국민적 냉소는 바로 매니페스토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조금 아쉬운 점은 지난 지방선거의 매니페스토 운동이 너무 이벤트적, 단기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매니페스토가 진정한 운동으로 보여주고 사회적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웹2.0이 보여주는 트랙백, 피드백의 과정, 즉, 쌍방향 과정이 있었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 선거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생각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