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30일 월요일

서울시민 '강남북 격차에 대해 심각' 69.6%

서울시민 '강남북 격차에 대해 심각' 69.6%

최규식의원, 강남북 격차해소 특별법 제정 필요
 
양승오 기자  
 

10월 26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최규식의원(서울 강북을)은 서울시 국정감사 자리에서 강남과 강북간의 지역 격차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밝혔다. 이 조사에 따르면, 강남북 지역 격차에 대해 ‘심각하다’는 응답이 69.6%, ‘심각하지 않다’는 응답이 30.1%로 ‘심각하다’는 응답이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최의원은 이러한 서울시민의 의식 조사를 2004년부터 해마다 조사를 실시했다. 3년간 매년 조사 결과를 비교했을 때, 이러한 강남북 지역 격차의 심각성에 대한 서울시민의 인식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나, 그동안 정부, 서울시 등의 균형발전 노력이 실효를 거두고 있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남과 비강남권의 강남북 격차 인식 크게 엇갈려



특히, 최의원은 “서울의 중부권과 강북권 주민들은 강남북 격차가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강서권과 강남권 주민들은 강남북 격차가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조사에 따르면, 거주하는 지역별로도 강남북간 격차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 ‘심각하다’는 인식은 중부권(종로, 중구, 용산, 서대문, 마포, 은평)이 81.4%로 가장 높았고, 강북권(성동, 광진, 동대문, 중랑, 성북, 강북, 도봉, 노원)이 78.2% 조사되었다. 반면, 강남권(서초, 강남, 송파 강동)은 ‘심각하지 않다’(54.6%)가 ‘심각하다’(45.4%)보다 높게 나와 지역별로 인식차를 보여 주었다.   

강남 편향적인 각종 정책과 지원으로 강북 발전 저해


강남에 비해 강북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응답자 중 34.3%가 ‘강남편향적인 각종 정책과 지원’이라고 대답했다. 다음으로 ‘강북개발에 대한 서울시의 의지 부족’(23.7%), ‘도로 교통 시설 등 기초 인프라의 부족’(18.1%), ‘토지와 집에 대한 높은 보상가격으로 인한 재개발의 어려움’(12.7%), ‘그린벨트, 문화재 보호 등 강북 개발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9.0%) 순으로 나타났다.

강남북 균형발전에 대한 전반적 서울시 정책 평가 매우 부정적


강남북 균형발전에 위해 서울시가 수행하고 있는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은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적 평가가 67.7%로 매우 높았으며,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는 27.3%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조사 결과에 최의원은 “서울시가 마음만 먹으면, 강북도 강남처럼 발전된 모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서울시민들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최의원은 “강북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법적인 규제나 제도의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시가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규식 의원, “강남북 격차해소 특별법 제정”을 통해 해결해야

강남북 격차 해소를 위한 방법으로, 응답자들은 ‘강남북 격차 문제가 심각한 만큼 특별법 제정을 통해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61.8%)는 의견이 ‘다른 시도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으므로 현배의 법과 제도 내에서 지원하면 된다’(35.8%)는 의견보다 높게 나타났다. 최의원은 “강남지역 개발을 위해서는 대폭적인 규제완화 및 지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이 조사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지난 9월 26, 27일 양일간에 걸처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서 실시했다. 

11월 2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후원의 밤 행사 개최 예정

11월 2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후원의 밤 행사 개최 예정
아시아 최초 대통령 도서관, 국민참여 대규모 후원행사
양승오 기자
아시아 최초의 대통령 도서관인 연세대 김대중도서관(관장 류상영 국제학대학원 교수)은 11월 2일 저녁 7시에 연세대 대강당에서 ‘후원의 밤’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김대중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연세대에 기부하여 운영되고 있고 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인 동교동에 위치하고 있다.

김대중도서관은 현재, 사료(문헌사료, 구술 동영상), 연구(연구총서 기획), 교육(김대중 평화강좌 개설), 전시, 국제 협력 등의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북평화 노력과 평화에 대한 학술 활동에 동의하는 후원자의 후원금 등으로 운영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 후원회 행사 모습(전북 무주리조트). 이날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참석해 강연을 했다.     © 양승오





























김대중도서관 후원회(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회장)는 이미 지난 8월 전북 무주에서 전국적인 후원회 행사를 개최하여 소액다수기부 문화의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후원회 행사에는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직접 강사로 참여해, 퇴임 후에도 이어지는 남북평화에 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이날 후원의 밤 행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참석 예정이며, 임채정 국회의장, 정창영 연세대 총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등 정재계 등의 인사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김대중도서관 후원회 사무국 장안식 사무총장은 “이날 행사에서는 전국의 소액다수 후원회원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새로운 국민참여 기부문화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현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안식 사무총장은 이날 행사는 누구나 참석 가능하며, 당일 후원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새롭게 단장해 손님맞이를 마친 김대중도서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과 전시관 관람이 가능하다. 특히, 1층 전시관은 전임 대통령의 집무실을 그대로 옮겨 놓았으며,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김 전대통령의 기록 등이 이번에 공개된다고 한다. 또한, 지하 컨벤션센터는 학술세미나, 지역주민행사 등에도 이용가능하다고 한다.

* 전시장 관람 안내 및 후원(http://www.kdjlibrary.org),
  후원회카페( http://cafe.naver.com/djlibrary.cafe )        


2006년 10월 19일 목요일

[펌글:오마이뉴스]기로에 선 노무현 정부

기로에 선 노무현 정부
'4대 비극'의 함정에서 빠져나올까
[기고] 최민식 전 열린우리당 원내기획부실장 "원칙으로 돌아가라" (최민식(newway40) 기자)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일하면서 참여정부의 성공을 누구보다도 기원했다. 그러나 집권 4년째인 지금 노무현 정부가 성공을 거둘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단도직입으로 말해 노무현 대통령의 4대 비극의 다음과 같다.

[민족] 미국 일극체제하 한미 양국 대북정책의 엇갈림
[경제] 97년체제하 대중의 민생요구와 신자유주의의 불일치
[정치] 무능을 강제하는 레짐과 정치혁신의 부재
[주체] 평화민주개혁세력의 무좌표와 참여정부의 이탈

이 4대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비극으로 이름붙인 이유는 아직도 원칙으로 돌아갈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눈을 부릅뜨고 국민의 여망에 몸을 던지는 개혁가의 미학이 살아 있다면, 그리고 평화개혁세력 전체가 국민과 시대의 명령에 의해 새로 태어난다면, 미래는 결코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 미국 일극체제하 한미 양국 대북정책의 엇갈림

민족문제, 대북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상수였고 한국은 변수였다. 각각 정권의 성격이 어떻고 두 나라의 정권 조합이 어떤 양상을 보이는가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길로 걸어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클린턴과 김영삼, 클린턴과 김대중, 부시와 노무현.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2월 25일 대통령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언급하여 민족우선론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후 YS는, 북한의 남북 특사교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부하고 핵을 가진 북한하고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북핵위기가 불거진 것은 94년 6월. 1년 전인 93년 3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NPT 탈퇴를 통고한 이후 1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북미간의 협상은 1994년 6월 13일 북한이 결국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탈퇴함으로써 결렬되고 북핵사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후 미국의 전쟁감행 전략에 의한 2차 한국전의 위기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6월 14일 페리 국방장관이 소집한 군 수뇌부 회의에서 게리 럭 주한미군 사령관은 작전계획 5027 실행방안에 대해 상세히 보고했고 그 시점에서 페리는 제2의 한국전이 불가피함을 직감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한편 당시 클린턴의 정책을 공공연하게 비판해왔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개인자격으로 방북을 단행한다. 6월 16일,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동결'시키라는 카터의 요구에 김일성은 잠정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겠으며, 미국이 경수로 공급을 약속하면 항구적인 동결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그날 6월 16일,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대북제재에 관련한 안보회의를 소집해 군비증강 등 전쟁준비를 검토하고 있었다. 클린턴은 김일성의 요구를 받아들여 "북한이 진정으로 핵개발을 동결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고위급 회담 재개에 동의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차 한국전의 위기는 소멸되었다.

반면 김영삼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강하게 나가면 전쟁이 난다고 말리고 유화적으로 나가면 북한에 휘둘린다고 미국을 비판하곤 했다.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은 동맹국가인 미국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사활이 걸린 북한 핵 문제를 미국과 북한의 문제로 치닫게 만들었으며 협상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한국은 철저하게 소외됐다.

김영삼 정부는 위기가 고조되던 그해 6월 13일, 수 년 만에 처음으로 전시 동원에 대비한 사상 최대 규모의 민방위 훈련을 하겠다고 발표해 국민들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증시는 이틀만에 25% 곤두박질쳤고 국민들은 쌀과 라면, 양초 등을 사재기하기 위해 가게로 몰려갔다. 김영삼 대통령은 평양 방문에 앞서 서울에 들를 예정이었던 카터에 대해서도 그의 방북이 "시기적절하지 못한 것"이며 북한의 "지연전술"을 부채질할 수 있다고 말하며 전쟁 위기를 타개해 보려는 그의 행보를 마땅치 않아 하기도 했다.

97년 평화적 정권교체에 의해 김대중 정부가 탄생했다. '햇볕정책'을 내건 김대중 정부는 대북 전략가인 임동원을 앞세워 미국의 대북정책을 조정하게 만들고 그것은 대북정책조정관 페리의 보고서로 나타났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99년 10월 페리보고서의 한 문장을 통해 미국의 대북정책과 한국이라는 변수의 상호작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정부도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변화를 맞게 되었다. 즉 김 대통령이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지도자로서, 우리의 동맹국이며 또한 미군 3만7000명이 주둔하고 있는 국가의 대통령으로서, 김 대통령의 의견과 통찰은 한반도에서의 미 안보목표를 달성하는데 중심적인 요소라 하겠다. 어떠한 미국의 정책도 한국정부의 정책과 조율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다. 오늘날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은 우리에게 94년 당시와는 크게 다른 상황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페리보고서가 채택된 후, 클린턴의 방북과 북미수교까지 검토되었던 2000년, 햇볕정책의 최고의 정점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남북관계는 급속히 발전하게 된다.

2000년 11월 미국의 43대 대통령으로 부시가 확정되자 남북관계는 다시 불안해진다. 언감생심 북미수교는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고 포괄적 이중전략 또는 포용정책은 무시되었다. 부시의 양대전쟁 전략(이라크와 북한)은 날로 구체화되어 갔다. 2001년 9·11 테러는 부시의 대북 강경노선을 강화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다. 2002년 1월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은 북한 김정일 정권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었다. 2003년 3월 이라크전 개전으로 양대전쟁 전략은 노골화되었다.

한국의 2002년, 효순·미선 사건과 월드컵 분위기는 대선정국에서 반미 또는 극미감정을 점화시킨다.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노무현은 "사진 찍으러 미국을 방문하지는 않겠다"고 발언한다. 미국에 대해서 할말을 할 것 같은 지도자로 각인되는 계기가 되면서 대통령 당선을 가능케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취임 후 단행한 대북송금 특검과 잦은 대미 발언의 실수들은 일관성없는 정책과 더불어 미국의 불신을 자초, 대북정책에서 한국의 이니셔티브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2003년 5월 첫 번째 방미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에게 덧씌워진 '반미혐의'를 확실하게 벗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소위 '정치수용소' 발언의 실수를 범한다.

"만약 53년 전 미국이 우리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2003년 5월 13일, 뉴욕 코리아 소사이어티 주최 만찬연설)

핵심지지층에서는 '대미 저자세 굴욕외교' 논란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후 이 발언을 합리화한 '한신의 처신' 발언으로 미국은 노 대통령을 이중적인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 및 한미관계에서 한국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민족문제나 남북관계에 대해 '자주'라는 표현은 많이 하면서도 실제 무게중심은 한미동맹에 있었다. 6자회담이나 개성공단 등 모든 정책을 미국의 주도권 아래에 두었고 북핵과 경협의 연계정책은 정경분리의 대북정책 원칙에도 어긋났다. 노무현 대통령의 평화번영정책은 결과적으로 햇볕정책을 미국의 통제하에 두자는 것으로서 한국의 자리를 내준 꼴이 되었다. 그사이 국내 평화세력의 분열과 해체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첫 번째 비극, 그것은 네오콘으로 무장한 부시 정권의 존재와 햇볕정책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세력의 해체를 자초한 참여정부의 엇갈림이었다.

2. 97년체제하 대중의 민생요구와 신자유주의의 불일치


1997년 이후 사회의 변화를 빗대어 '불안사회'라고 표현하고 있다. 모라토리움을 극복하기 위해 받아들인 미국식 세계화는 냉혈한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 속에서 삶의 위기를 일상화한, 불안보다 강렬한 새로운 '공포'였다.

U자형 사화양극화는 여러 가지 계기에 의해 진척되었고 사회 전부문에 걸쳐 일어났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성장률의 둔화', '양질의 일자리 감소', '산업부문간 연계의 약화'에 있다. 그 속에서 부동산가격이 폭등하고 주식시장이 물결치는 약탈경제의 현상이 두드러지게 증대하면서 서민경제의 몰락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97년 이후 9년이 흘렀다. 87년 체제가 정치에 있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담보하고 그나마 국가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확대한 것이라면 97년 체제는 시장의 절대적 우위를 인정하고 국가를 시장에 굴복시키고야 만다. '시장', '친기업', '경쟁', '유연화', '세계화' 같은 담론들이 한국사회에서 헤게모니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87년의 국민적 열망이 직선제에 그쳤다면 97년의 국민적 열망은 평화적 정권교체에 그쳤다. 그리고 2002년 변화와 개혁을 내세운 노무현 정부의 탄생은 IMF 이후 일상적 삶의 위기에 선 국민들의 열망이 정치적으로 표출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국가를 통해 서민경제의 부흥, 더불어 잘사는 사회를 그렸던 대중의 열망은 재정과 조세, 기업정책과 노동정책에서 절망에 부딪히게 되었다. 개혁의 성격은 경제민주화개혁이나 민생개혁이라기보다는 시장만능주의를 제도화 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개혁'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미FTA 역시 비대칭적 역관계에 의해 사양산업뿐 아니라 성장산업에서의 위기감도 고조시키면서 국민 모두의 삶의 조건들을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두 번째 비극, 그것은 97년 체제하에서 신음해온 민초들의 열망과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참여정부 정책과의 엇갈림이다.

3. 무능을 강제하는 레짐과 정치혁신의 부재


진보개혁의 대위기이다. 부패한 보수보다 무능한 진보를 때리는 국민들은 5·31 지방선거에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해 사실상의 선거탄핵을 단행하였다.

비단 사태는 열린우리당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열린우리당 12%, 민노당 7%, 민주당 5% 수준의 '배제정당'으로의 전락. 그사이 한나라당은 45%의 정당지지도를 구가하고 있다. 산술적으로 3당의 지지도를 합산해도 한나라당의 절반을 웃도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이 한나라당이 국가를 맡을 만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판단하거나 세부적인 정책에서 한나라당 편을 드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진보개혁, 평화민주세력의 자멸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런가. 삶의 열망을 책임지지 못하는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다. 무능하다는 것은 이념과 비전과 전략의 부재를 이르는 다른 이름이고, 그리고 이를 실현할 인적 제도적 수단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87년 민주화시대가 합의한 헌법은 그런 의미에서 미완의 민주헌법이다. 대통령에 집중된 나머지 정당과 국회, 시민사회의 민주적 기능을 본래적 지위에 위치시키지 못했다. 이에 따라 미국식 양당정치도 유럽식 대중정당체제(다당제)도 수립하지 못한 채, 관료-재벌-집권세력 동맹이라는 보수레짐하에 개혁정권이 흡수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97년 체제는 미국식 세계화의 체제내화 속에서 국가의 역할이 더욱 축소되었다. 삶의 위기 속에서 정치와 국가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거꾸로 현실에서의 정치와 국가의 역할은 산술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 대한민국 정치에는 정당이 아니라 '여와 야'만 존재한다. 대통령을 에워싼 관료들이 정책을 지배하고, 국회에서는 정당이 아닌 여당이 거수기 노릇을 반복하며, 한나라당은 국회법이 보장한 의사진행 합의권력을 이용해 발목잡기 정략정치에 몰두한다. 민노당은 13%의 득표에도 불구하고 의석수 규정에 의해 원내교섭권조차 없다. 갈등은 대표되지 못하고 조정되지 못하는 무능의 수레바퀴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무능의 정체는 바로, 현실의 레짐 즉 대통령단임제, 행정부의 국가예산·정책 지배권, 헌법, 정당법, 국회법 등에서 정당정치의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5년 6월의 비극, 노무현 대통령은 '대연정'을 제안했다. 2004년말, 4대 개혁입법이 무산되면서 개혁정치가 실종되자 여권 내에서는 두갈래의 큰 흐름이 조성되고 있었다. 전통적 호남 지지층의 복원과 의회다수파 복원을 위해 민주당을 흡수하자는 견해와 개혁의 진전을 위해 민노당을 포함한 소연정을 추진하자는 견해였다.

그러나 청와대에서는 다른 전략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바로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대연정'이었다. 청와대는 보수레짐의 핵심을 '경상도'로 판단했다. 정치개혁의 성격도 경상도 내에서 개혁세력의 확대재생산 구조를 제도화하는 것 - 중대선거구제 였다. 여기에 청와대의 개혁통치 로드맵에 대한 자신감도 작용한 것이 바로 '대연정'이었다. 연말까지 지지층의 핵분열이 일어났고 여권내부에서는 탈노무현 흐름이 생겼다.

노무현 대통령의 세 번째 비극, 그것은 정당정치를 무능의 수레바퀴에 갇아둔 레짐과 이를 극복하려는 진정한 정치혁신의 부재에 있다.

4. 평화민주개혁세력의 무좌표와 참여정부의 이탈


2007년 대선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정초선거라면, 그래서 새로운 보수와 새로운 평화개혁의 국가발전전략 경쟁이 불을 뿜는다면, 문제는 평화개혁세력이다. 왜냐하면 보수세력이 네오콘과 함께 대북대결주의와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비전으로 제시하면서 사실상 현재의 레짐을 고집하고 있다면, 평화민주개혁 세력의 미래비전은 당연히 민족과 민중의 시대적 요구에 철저하게 복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87년 이후 97년까지 10여년간 평화민주개혁세력은 제도권 내에서 평화민주연구회(평민련), 민주개혁정치모임,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등으로 존재를 입증하여 왔다. 그러나 상대적 진보라고 평가되는 김대중을 추종하거나 영남개혁세력을 포용한 김영삼을 추종하거나 하면서 이후 10여년간 평화민주개혁세력이 분열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87년의 양김분열이 민족민주세력의 제도권 진출사의 원죄라면, 97년 정권교체 이후 평화개혁세력의 권력진출과 더불어 진행된 균열은 스스로 감당해야할 본죄이다.

그런 면에서 2002년 노무현의 집권을 두고 환호했던 것은 드라마틱했던 집권의 기적이라기보다는 평화개혁세력의 단독집권이라는 의미에서였다. 2004년 탄핵을 딛고 대대적인 의회진출이 성사되자 개혁정치의 본격화에 국민적 기대가 모아졌다. 152석의 과반수 여당이 탄생했고 민주노동당은 13.1%의 지지로 원내 3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수구냉전세력의 몰락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주인없는 당이었다. 토대의 변화와 국제정세의 변화를 읽고 당을 주도하는 리더십도 없었고, 관료와의 정책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정책세력도 없었으며, 개혁입법과 정치혁신의 과제에 대해 통일된 전략전술도 없었다.

한마디로 대통령의 정치에 끌려다니거나 관료들의 정책지배에 순응할 뿐이었다. 정치이슈든 입법과 정책이든 매 사안마다 다른 소리가 나왔으며 '개혁이냐 실용이냐', '집권당이냐 개혁당이냐', '친노냐 비노냐' 끊임없이 갈등하였다. 당내에서 '잡탕정당' 소리가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민주노동당도 교조와 교조, 교조와 현실사이의 갈등에 매몰되면서 또하나의 기성정치로 변질되고 있었다. 그사이 청와대와 정부는 국민과의 개혁약속보다는 '실용주의', '좌파 신자유주의'로 경도되었고 정당의 대표기능 강화보다는 통치의 효율을 중요시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네 번째 비극, 그것은 바로 평화민주개혁세력의 균열과 무좌표, 리더십의 부재에 있었고 더불어 참여정부의 통치효율주의에서 비롯된 세력이탈이라는 어긋남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평화민주개혁세력은 이 4대 비극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2006년 10월 18일 수요일

첫 자전거 출근 시도

드디어 마음 속에 미루고 있던 자전거 출근을 시도했다.

요즘 내가 근무하는 여의도 주변에도 아침저녁으로 자전거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그만큼 자전거 출근이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다.
주말에 사무실까지 몇 번 와 본 적이 있지만, 막상 아침에 자전거로 출근한다는 것이 마음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이유는,,

일단, 우리집에서 회사가 있는 여의도까지는 버스로 50분, 넉넉잡고 한시간 정도 걸린다. 자동차로 출근을 해도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 주말에 자전거로 와본 결과, 비슷한 시간이 걸린다. 그럼, 사실 일부러 헬스클럽 갈 필요없이 출퇴근을 이용해 운동삼아 자전거를 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침부터 힘빼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오늘 막상 실행해 보니, 부담보다는 상쾌함이 앞섰다. 물론 상쾌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사워를 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오늘은 일단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고, 준비해온 속옷과 셔츠로 바꿔 입었다.

두번째, 바로 사무실에서 옷의 문제다. 오늘은 가볍게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가방에 속옷과 셔츠 한번을 준비해 왔다. 50분의 자전거 타기지만,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을 때 보니 흠뻑 젖었다.
네이버 자출 카페에 보니, 양복을 입는 분들은 몇 벌을 사무실에 가져다 놓는다고 한다.
나도 다음에는 시도해 봐야겠다. 현재 자출의 목표가 1주에 3번으로 삼았다.
양복과 셔츠, 구두 정도 가져다 놓은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 씻고 자리에 앉으니 엉덩이가 너무 무겁다. 아마 오랫만에 자전거를 타서 그럴 것 같다.
하지만, 몸은 하늘을 날 것만 같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가 보다.

오늘 내가 타고 온 길은 행복한 코스다. 청계천에서 한강고수부지를 타고 마포대교 북단에서 남단을 넘어 여의도로 골인....시간은 50분.

한강에는 아침부터 웨이크보드는 타는 여성분이 있었다.

2006년 10월 16일 월요일

도서관 배너 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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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의 힘

어제 드디어...방문자 1,200명 선을 돌파햇다.

설치형 블로그를 시작한지 2개월만이다.

처음 민모 교수님의 추천으로 알게된 블로그의 세계, 그리고 이모 기자의 재미난 글을 읽으면서 블로그에 대한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젠 선무당이 뭐한다고...
아는 분들을 만나 블로그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UCC, 웹2.0, 시멘틱 웹  등등....잘 모르는 단어지만,, 주워 들은 말을 종합해 블로그를 전도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하루 방문자 500명을 넘어설 때, 신기햇는데..이제 1,000명이 훌쩍 넘어섰습니다.
나름대로의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곳을 방문한 분들에게 어떤 재미를 드려야 하는..(조금 건방지죠)

그러나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새롭고, 창조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면 블로거들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펌의 세계에서 창조의 세계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 즐거운 블로거가 되세요.

2006년 10월 9일 월요일

김대중 도서관 영상자료

영상자료

중국 속의 또다른 한국, 칭다오(靑島,Qingdao)

 

중국 속의 또다른 한국, 칭다오(靑島,Qingdao)

-한국엔 중국이 많다. 중국에도 한국을 만들어야 한다


나무젓가락부터 시작해, 김치까지 ‘메이드인차이나’가 넘치는 한국. 한국에는 중국이 너무 많다. 한국의 대기업, 중소기업의 제조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해 가고 있다는 것은 이제 옛일이 되어 버렸다. 우리의 먹을거리부터 시작해 가정의 의식주가 중국화되어 버리는 이 시점에서 중국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외교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그러나 실상 한국내의 국민들은 감정적 항변만 할 뿐, 중국의 거대한 야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속수무책이다.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 속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왜곡된 역사관에 한국인들이 주먹을 쥐고 외치더라도 그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러한 자극적 외교 전쟁에 우리는 무엇을 취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경제, 문화적 게릴라전을 통해 중국 속에 한국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 기내의 창을 내다보니, 서해안의 수평선이 날개 너머에 보인다. >


< 청도의 루틴 공항. 한국 인천공항에서 1시간여 거리이다. >
 

필자가 중국 산동성 청도시에 방문한 것은 9월 마지막주. 때마침 중국의 국경절 연휴를 앞두고 있어 시가지에는 붉은색 치장이 화려했다. 관공서와 학교 등에 걸린 붉은 휘장과 현수막으로 중국 정취가 물씬 풍겼다. 그러나, 고층 빌딩 사이로 철거된 고가, 그 옆의 건축현장의 타워크레인 등이 개발의 현장감을 전해 주었다.

<루틴 공항에 내린 우리 일행들. 날씨가 한국보다 더워 바로 반팔로 갈아입어야 했다>

인천공항에서 청도의 루틴공항까지 1시간여 비행. 군산과 위도가 비슷하다는 말에 청도의 하늘에서 내려본 지형은 한국의 남도를 연상케 했다. 푸른 바다 옆에 강렬한 붉은 빛을 발산하는 흙과 지붕으로 필자는 우리 땅 남도의 황톳길을 떠올렸다.


청도는 ‘푸른하늘(藍天), 푸른바다(碧海), 푸른나무(綠樹), 붉은지붕(紅瓦)’으로 형언

< 청도 해변가. 해군박물관, 장개석별장 등을 방문했다>

청도는 산동성의 한 도시이지만, 중국의 10대 도시 중 하나로 불린다. 또, 중국에서 네 번째로 큰 항구 도시로서 67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1879년 독일에 의해 점령당한 청도는 이후 1914년 일본에 점령당했는데, 이러한 역사적 과정으로 인해 청도 시내 곳곳은 독일식, 일본식, 스페인식 등으로 지어진 건축물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과거 열강의 식민지였던 역사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우리 3.1운동과 연결된 중국의 5.4운동의 태동지이기도 하다. 청도 해변가의 오사광장에는 중국의 5.4운동의 기리는 ‘오월의 바람’ 이라는 조형물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 광장에는 중국의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인생의 한번, 바다를 보고 싶어 멀리 내륙 지방에서 올라온 중국인들이다.


산동성 한국인 10만 명, 2010년에는 40만 명 정도될 것으로


청도, 위해, 연태, 제남 등 산동성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1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청도 인근에 집중되어 있는데, 다른 중국 도시와는 달리 한국인에 대한 중국인의 인상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5년 전, 청도에 발을 내딛은 심상우원장은 현재 청도에서 유명한 외국어학원을 경영하고 있다. 심선우원장 등 63년 토끼띠 동갑내기 5명이 똘똘 뭉쳐 청도 이주 2세대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심원장은 현재 청도 내 한국인이 10만 명이지만 북경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발전이 가속화되면 40만 명이 넘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청도에 불고 있는 부동산 열풍에 한국인이 한몫하고 있는데, 해변가에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택지 지역에 한국 투자자가 몰리고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택지 개발 지역의 경우, 평당 한화 500만원 정도를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경기도 외각의 위성도시의 분양가수준이다 보니, 한국인 투자자가 많이 몰린다고 한다.

< 청도 시내의 Dr. Paul 외국어학원을 경영하는 심선우 원장. 단신으로 청도에 건너가 외국어 사업을 시작한지 5년째. 대표적인 청도 이주 한국인 2세대. 그는 중국에서 사업하기 전에, 중국과 중국어를 반드시 먼저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교육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심원장은 중국의 교육 환경이 한국보다 낫다고 평가하고 있다. 중국어를 배우면서 영어공부를 동시에 할 수 있고, 새로운 문화, 특히 아시아의 경제와 문화를 주도하게 될 중국 문화의 선행학습은 미래의 아시아경제문화권의 키포인트가 될 것이라 본다. 그리고 현재 중국의 교육수준이 한국보다 높고, 효율적이어서 장기적으로 비전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심원장은 현재 두 딸을 모두 중국인학교에 보낸다고 한다. 한국인학교에 비해 아이들이 학습능력이 떨어져 고민스럽지만, 아이들이 중국화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철저히 중국화시키고자 한다고 한다. 청도에도 조기유학을 온 어린학생들이 많지만 태반이 적응을 못하고 있다. 한국식 소비와 생활을 하면서 중국어만 배우려는 태도가 부적응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중국인, 불의는 참을 수 있어도 불이익은 못참는다


필자는 청도의 유명한 노산에 올랐다. 중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1,000미터 이상의 고산이다. 중국 도교의 성지로 유명한 노산은 한국의 웅장한 산맥처럼 느껴졌다. 해풍을 막고 있는 그 형상이 보성지역과 흡사해 차밭으로도 유명하다.

노산 등반을 마치고 시내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중교통이 없어, 자가용영업차량을 어렵게 불렀다. 좁은 승합차에 연인으로 보이는 2명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좋은 좌석에 불만을 토로하니, 운전사가 그 두 사람을 내리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 일행에게 차에 오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먼저 탄 차에서 쫓겨난 신세이지만, 그 연인들은 웃으며 차도 없는 길을 터벅터벅 내려가고 있다.


< 청도 라오산에서 >


등산길을 함께 한 심선우 원장은, 중국인의 기질을 보여 주는 것이라 말한다. 운전자는 좀  전의 두 사람에게 10원을 받기로 했고, 우리 일행을 태워주면 한번에 70원을 벌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두 사람을 내리라고 했고, 그들도 그것에 동의하고 기꺼이 내린 것이다. 중국인들은 경제적 이익을 두고 실리를 따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세계 곳곳에서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에서 이런 경우가 벌어졌다면 벌써 상대의 멱살을 잡고 있었을 것이다. 이 중국인 운전자는 한술 더 뜬다. 고속도로 한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10원을 더 요구한다. 10원을 더 주지 않으면 여기서 내리라고. 중국의 또다른 상술을 배웠다.


중국땅은 암탉의 형상인데, 그 부리가 한국을 향해 있어

< 중국전도, 암탉의 형상을 한 중국은 부리가 한반도를 향해 있다>

이전에 필자가 중국의 다른 도시를 방문했을 때, 오랫동안 한국 기업의 중국주재원으로 있던 분에게 들어 이야기이다. 중국의 지도를 보면 암탉의 모양을 지니고 있는데, 그 부리가 한국을 향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한국을 언제든지 능가할 수 있다고, 그들의 자신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중국의 경제적 지표가 한국에 비해 낙후되어 있지만, 중국인들이 결심하고 달려든다면 한국은 언제든지 넘어설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매년 10%이상의 경제성장을 몇 년째 계속하고 있는 중국의 저력을 무시하면 안된다고 충고를 덧붙였다.

공산국가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폐쇄적 국가 운영을 오랫동안 지속해 왔다. 한자문화권에 살면서 한국은 서구화를 지향했고 중국을 간과해 왔다. 문호를 개방해 경제적 발전을 가속화하고 있는 중국 앞에서 지척거리에 있는 한국은 남들보다 대응 속도가 느린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이미 주변국 일본은 중국의 알짜를 빼가고 남은 것을 한국인들이 서로 아웅다웅한다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중국 현지에서 사업을 구상중인 한국인들은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아직 중국에서 한국인이 할 일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중국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을 너무 쉽게 보는 한국인의 풍조를 경계해야


청도에서 만난 이철지 사장. 그는 청도에서 여행사를 경영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이 이른바 중국 ‘꽌시’였다고 한다. 공산당 간부나 공안 당국과의 인맥이 없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경험이 많았다는 것이다. ‘꽌시’만 있으면 안되는 것도 되게 할 수 있는 곳이 중국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청도내 한국인의 위상이 많이 커져 중국인들이 한인상공회를 무시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인 한명이 중국인 열 명을 먹여 살리기 때문이다.

이철지 사장은 한국인이 경제적 우월감에 중국을 무시하는 풍조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에는 우리가 아직 모르는 그 무엇이 무궁무진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중국을 두려워해야 할 점이라는 말한다. 사실, 중국의 갑부가 최근 경제발전으로 급작스럽게 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한국 사회의 부자와는 다르다. 한국처럼 움켜쥐는 스타일이 아니라, 이익이 되는 곳을 찾아 과감히 투자하는 스타일이다. 중국의 장사 속 앞에 한국 경제가 언젠가 휘청할 수도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사장은 한국인이 노릴 수 있는 틈새는 바로 중국인의 1%에 있다고 한다. 신흥갑부로 새로운 소비와 투자를 누리고 있는 그들에게 한국인이 도전해야 할 것이라 말한다.


우리는 지금 세계적 추세에 따라 중국이라는 거대한 산을 타고 넘을 시점에 이르렀다. 유럽연합 등 글로벌 경제 트랜드가 지역체로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경제체제의 필요성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한걸음 물러나 중국을 이해하고 연구하고자 하는데 투자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열풍처럼 불고 있는 유학바람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국가적 투자와 계획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며, 한국의 우수한 청년 인재를 거대한 기회의 땅 중국으로 보내 우리의 대중국 정보망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익 앞에 내정해지지만, 다른 한편 상대를 신뢰하기 전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중국을 이해하는 노력이 절실하다.